법원 “인정할 증거 없다”
고의성도 인정 안 해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사법농단’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54)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원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이뤄진 사법농단 관련 의혹 사건 중 첫 번째 판결이 무죄가 되면서 앞으로의 재판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수석연구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전 수석연구원은 대법원에서 근무하던 2016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휘하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만들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임 전 차장이 박 전 대통령 ‘비선 진료’에 개입한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소송 상황을 유 전 수석연구원을 통해 알아보고는 청와대에 내용을 누설했다고 보고 있다.
유 전 수석연구원은 상고심 소송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담긴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퇴임 뒤 개인적으로 가져가고, 대법원 재직 시절 취급했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한 혐의도 받는다.
1심 재판부는 이 모든 혐의를 모두 무죄로 봤다.
유 전 수석연구원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청와대 등 외부에 이를 제공하는 등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가져나간 혐의에 대해서는 “해당 보고서 파일이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파일 내용 중에 개인정보가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기소한 출력물이 대법원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 전 수석연구원이 소지·관리하게 된 출력물과 같은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개인정보 유출은 기본적으로 개인정보처리자의 관리·통제권을 벗어나는 것을 상정하는데 이미 밖에 나간 상태라면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 전 수석연구원이 공소사실에 기재된 개인정보를 변호사 영업에 활용하려 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에게 출력물에 대한 절도 혐의가 있다거나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점유를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유 전 수석연구원이 직무상 취득한 사건을 수임했다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이 사건 상고심 사건을 피고인이 직무상 취득한 사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유 전 수석연구원은 재판을 마친 뒤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결해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정직하게 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 전 수석연구원에게 무죄를 내린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관계자들의 재판도 담당하고 있다. 다만 유 전 수석연구원 사건이 핵심 당사자들과의 직접 연관이 적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이날 재판에서 임 전 차장과의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임 전 차장 재판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이 별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 전 차장 재판은 지난해 6월 임 전 차장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면서 재판이 멈춰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