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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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경자년 새해에는 아침에 잠깐 눈이 내렸다.

옷깃을 스쳐 지나갈 인연만큼만 눈이 왔다. 아쉬웠지만 공간적으로 오히려 넉넉했다.

오후 늦게 찾은 사나사(舍那寺)에는 돌계단에 내린 눈을 누군가가 쓸고 있었는데, 눈 내리는 모습도 그랬고 눈 치우는 모습도 그렇고 눈 치우는 소리도 정겨워서 좋았다. 새해의 시작에 어울리는 품위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사찰은 대웅전을 축으로 넓은 마당이 있고 양옆으로 작은 건축물들이 있다.

왠지 사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완성되는 느낌이라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사찰을 찾은 두 분이 다정하게 마당을 지나간다. 비워진 공간이 꽉 찬 느낌으로 금세 바뀐다.

공간이 무엇인가? 공간의 본질을 파헤치기 전에 사람은 이미 공간을 느끼고 있다. 느낌이 나쁜 것은 멀리하고 느낌이 좋은 것은 가까이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느낌 좋은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순간의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자기식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좋은 공간이 내 앞에 왔다가도 관심 없으면 쉽게 가버리는 발 달린 짐승처럼 아는 만큼 붙잡을 수 있고 알아차리는 것은 아닌지?

평소에 좋은 공간에 대한 이해와 평정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좋은 공간을 애써 찾더라도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계절이 있기에 계절별로 다양한 느낌을 몸소 체험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한다면 공간의 좋고 나쁨을 파악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보다 인간의 순리에 따라 만들어지고 이해되는 것은 아닌 건지.

그래서 좋은 공간은 자신의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주위를 넉넉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을 때 순간 보석 같은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공간에 갔다 하더라도 미워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감흥도 없고 공간에 관심도 없을게 뻔하다.

좁고 허름하고 볼품없는 공간이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서 다시 보면 그전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을 때도 많다.

서울 강북 성수동에 있는 한때 공장이 많았던 지역이 현재의 상황에 맞게 낡은 공장을 개조해서 카페나 문화공간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활기찬 공간으로 변했다.

이런 현상들은 시간의 켜가 묻어 있고 과거에는 불편한 요소가 나름의 장식적이고 가치 있는 공간으로 이해되면서 공간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값진 공간으로 자리하는 것을 보면 공간이란 사람이 만드는 4계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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