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김대중 처형시 한미관계 파탄"
일 `北과 교류 확대 가능' 거론

(서울=연합뉴스) 미국과 일본 정부가 1980년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구명을 위해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던 것으로 21일 드러났다.

외교통상부가 이날 공개한 비밀외교문서에 따르면 미 하원 외교위 아·태 소위원회 소속 의원 9명은 1980년 10월3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내 "만약 김대중이 처형당하면 한미 관계는 파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한국 정부가 이 같은 경고를 무시하면 주한 미 대사를 소환하고, 미 수출입은행 차관을 포함한 경제 협력을 유보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8월28일 열린 하원 외교위 공개청문회에서 의원들은 한국에 대한 차관 제공 중단을 행정부에 건의했으며, 리처드 홀브룩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대중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미국이 피난처를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미 의회는 이어 8천800만 달러 상당의 항공기 부품을 한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냈으며, 미 국무부도 김대중 재판 결과가 양국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본 정부 역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심 첫 공판'>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 한일 정치결탁 의혹으로 여론의 공격을 받자 북한과의 교류 확대 가능성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총리는 최경록 주일대사와 면담에서 "김대중이 극형에 처해지면 대한 협력은 큰 제약을 받을 것이며, 북한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요구하는 여론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을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특히 김 전 대통령이 극형에 처해질 경우 여론과 야당의 공격으로 입지가 좁아질 것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시했다.

같은 기간 일본에서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연일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일본 노조는 김대중 사형을 집행할 경우 한국과의 유관 사업을 `파열'시키겠다는 내용의 결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대응을 펼쳤다.

주미 한국 대사관은 미 국무부에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만큼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공개적인 논평을 삼가달라'고 요청했으며, 미 유력 언론에 계엄 사태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기사 게재도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무부(현 외교통상부)는 일본 주재 공관에 김대중 구명 시위 및 집회를 적극 저지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에 따라 각 공관은 민단과 기자 등을 동원해 `김빼기 작전'과 `맞불 시위' 등을 조작했다.
또 문화공보부 해외공보관은 김대중 죄상과 적용 법조항, 적용법의 입법취지, 군재판 절차, 예상 문제 등으로 구성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홍보 참고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해외 홍보에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