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유학 첫 해인 1942년 잠시 귀향한 윤동주(뒷줄 오른쪽) (사진제공: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스캔)


시인 조카, 도쿄서 고모부 ‘증언’ 전해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의문에 가려졌던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마지막 시에 대한 조카의 증언이 공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가 일본 릿쿄(立敎)대에 다니던 시절인 1942년 6월에 고국의 친구 강처중(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보낸 편지 속 시 <봄>을 최후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몇 편의 시를 더 남겼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福岡)형무소에서 만 27세로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가 남긴 마지막 시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80~90% 추측 속에 몇 가지 증언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한 가지는 1943년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다니던 중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치안유지법 위반)로 교토 시모가모(下鴨) 경찰서에 체포된 직후에도 시를 지었다는 주장이다.

1995년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다룬 프로그램을 만든 전 NHK 프로듀서 다고 기치로(多胡吉郞)씨는 “당시 가족들이 경찰서로 면회하러 갔을 때 시인이 자작시를 일본어로 바꿔 보여줬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 시민단체인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대표 안자이 이쿠로)’가 지난해 교토지방검찰청에 시인의 시가 포함됐을지 모를 수사ㆍ재판 기록을 공개하라고 청구했지만, 남아있는 것은 1944년 3월 31일자 판결문뿐이었다.

시인이 그 후에 지은 시가 북한 등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언도 있다.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20일 오후 도쿄 릿쿄대에서 열린 윤동주 시인 추모식에 참석해 시인의 매제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오형범(호주 시드니 거주) 씨로부터 최근에 들은 말을 전했다.

윤 교수는 추모식에서 “고모(윤혜원)와 고모부는 중국 용정에서 살다가 1947년 12월 그곳을 떠나 1년간 북한 청진과 원산에서 머물렀고, 1948년에 서울에 왔다”며 “청진에 있을 때 만난 김윤립이라는 고등학교 교사가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 있을 때 사연과 시가 적힌 엽서를 보내왔다’고 했다. 김 씨도 릿쿄대 유학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944∼1945년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가 적힌 엽서는 당시 북한 아오지에 있는 김 씨의 집에 있어서 남쪽으로 가져올 수 없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이 증언을 통해 “지금까지는 <봄>이 마지막 작품인 줄 알고 있었지만, 큰아버지(윤동주)가 그 후에도 시를 더 지으셨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1917년 12월 중국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졸업 후 1942년부터 일본에서 유학했고, 1943년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다. 1948년 2월 16일에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됐으며, 매년 2월이면 연세대와 릿쿄대 등지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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