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놈은 성깔 있게 푸르다


유준화

혼자 살기 때문에

혼자서 맨땅에 머리 처박고 살기 때문에

외로워서 잎이 푸른 것이다. 나무는

너도 푸르고, 나도 푸르고, 그렇게 산 하나

시퍼렇게 물들이며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 더 약하고 외로운 놈은

가늘고 뾰족한 바늘을 수만 개나 만들어

엄동설한에도 푸르다

독침 같은 바늘로 폭풍한설과 마주 싸우며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진짜 외롭고 약한 놈은 성깔 있게 푸르다.

 

[시평]

‘푸르다’라는 말에는 왠지 외로움이 깃들어 있을 듯하다. 푸른빛이 띠고 있는 서늘함이 왠지 적적함을 불러올 것 같아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된다. 푸른 소나무에서 연유한 말이기는 하지만, 흔히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무엇을 지켜야 하는, 푸르디푸른 외로움, 청청(靑靑)은 바로 이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푸르다’와 ‘시퍼렇다’는 같은 종류의 색을 말하고 있지만, 엄청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외로움을 견디다 보면, 시퍼런 오기 같은 것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푸르다’에 비하여 ‘시퍼렇다’는 마치 그 외로움 속에서 견뎌야 하는 오기(傲氣)와 같은 것이 잔뜩 담긴 말이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나무라는 생물은 혼자서 맨땅에 머리 처박고, 그 자리를 죽을 때까지 떠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닌 슬픈 존재이다. 그래서 외롭기 때문에 그 잎이 푸르다는 발상은 참으로 새롭다. 또한 그래서 가늘고 뾰족한 바늘을 수만 개나 만들어, 독침 같은 바늘로 폭풍한설과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디 나무뿐이겠는가. 기다리며 사는 것 또한 우리 모두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산 하나 시퍼렇게 물들이며 서로서로 가족이 되어 살아가지만, 기다리는 것, 견뎌내는 것, 어쩌면 모두 모두 저마다 홀로 맨땅에 발 딛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