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전국노래자랑 예선 무대를 앞두고 조재희(가운데) 씨가 의용소방대원들과 호흡을 맞춰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동작소방서 소속 의용소방대 ‘수호천사’

‘생명’ 전하기 위해 KBS 전국노래자랑 출전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KBS 전국노래자랑 예선전이 펼쳐진 서울 동작문화원 대강당. 실로폰 소리 하나에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이 경연장을 누구보다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관중석에서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의용소방대원 조재희(49) 씨가 바로 그 주인공. 재희 씨는 오늘 소방대원들과 참가자 자격으로 무대에 섰다.

재희 씨는 “노래하러 온 게 아니라 오늘은 의용소방대원들이 하는 일을 알리러 왔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습을 위해 팀원들과 복도에 선 재희 씨는 몇 번이고 리허설을 했다.

웬만한 노래실력에도 ‘딩동댕’을 쳐주지 않는 심사위원들을 사로잡기 위해 특별한 무대도 고안됐다.

이를테면 무대 인사 후 백댄서로 선 다섯 명의 대원 중 한 명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면 다른 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한다. 이어 한 대원이 ‘환자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라고 외치면서 춤을 추며 트로트 ‘당돌한 여자’를 부르는 식이다.

이 같은 내용은 그들이 심폐소생술을 알리기 위해 왔음을 알리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그런데 대원들의 연기를 지켜보던 의용소방대 최양옥(54) 여성대장이 시범을 보이겠다며 나섰다. 심사위원에 눈에 띄려면 무대 중앙에 쓰러지지 말고, 무대를 휘저으면서 심사위원 쪽으로 넘어져야 한다는 것.

정작 연기를 해야 할 사람은 나찬순(42) 씨인데도 안달이 났던 최 회장은 복도에 벌러덩 누우면서 시범을 보였다. 그의 천연덕스러움에 긴장된 순간에도 대원들은 서로 마주보며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를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원규 동작소방서 홍보팀장은 “‘수호천사’는 서울 25개 소방서 중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팀”이라면서 “서울 전역 학교·기업·관공서·소방서 등을 다니며 심폐소생술 교육을 통한 홍보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동작소방서 소속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호천사’는 “관내 재난·화재 등 비상시에 동원되고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처지법을 구민들에게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창설됐다.

▲ 동작 의용소방대원들이 예선무대에서 준비한 장기를 선보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오늘의 활동도 의용소방대원들의 단합은 물론, 심폐소생술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겠다는 큰 뜻이 내포돼 있었다. 이들이 이토록 심폐소생술을 알리려고 하는 데에는 이 기술이 배우면 누구나 쉽게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인데도 생명을 잃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동작소방서에 따르면 국내 응급환자 중 심폐소생으로 살아나는 사람의 비율은 1.5~3% 수준이다. 반면 외국의 심폐소생 생환비율은 30~40%에 달한다. 즉 한국은 응급처지로 100명 중 1~3명만 살지만, 외국은 30~40명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서 팀장은 “외국은 오래 전부터 심폐소생술을 전 국민에게 가르쳐 왔지만 한국은 2009년 이전까지 의사와 구급대원밖에 시행할 수 있도록 돼있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미흡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9년 ‘응급으로 인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심폐소생술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 대두됐다. 하지만 전문의료진만 교육을 받고 있던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교육을 체계적으로 알려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게 전문가의 전언이다. 그렇게 법 개정이후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심폐소생술 의무 교육을 대중화시킨 곳이 바로 동작소방서다.

동작소방서는 작년까지 초·중·고·대학교 약 48개소에 1대 1 순회 교육을 실시해 3만 명이 넘는 교육생을 배출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재희 씨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의용소방대원이 되려면 의무교육 60시간을 이수해야 하고, 강의실습과 이론, 필기시험 3단계를 통과해야 한다”고 전했다.

선발과정이 엄격한 만큼 대원의 사명감도 높다는 게 동작 소방서의 말이다. 선발은 1년에 2차례 밖에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소방서가 원할 때 언제든 봉사에 참여하겠다는 협조에 동의해야 하는 등 희생정신을 요구한다. 또 의용소방대는 단순 교통비 정도로 활동 수당을 받으며 일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봉사의 뜻을 둔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회가 열려있다. 의용소방대원이기 전까지 사실 재희 씨도 그냥 봉사를 좋아하던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다.

재희 씨는 “처음엔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 학교 운영위원, 급식위원회장, 어머니회 회장 등을 역임해 온 이력 정도였다”며 “평소 심폐소생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찰나 주변의 권유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전했다.

재희 씨는 그러나 의용소방대 뿐만 아니라 현재 동작구 내에 초·중·고 4개 교를 합친 학부모봉사단체를 창시해 꾸준히 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야 말로 봉사가 삶 자체인 것이다.

그는 현재 청소년을 위한 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 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 학과에 입학해 제 2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재희 씨는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이 많아 그들을 위한 봉사를 계속하고 싶은 게 꿈”이라면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전하는 일인 ‘심폐소생술’ 교육 보급에도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고 싶다”는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날 의용소방대원은 거의 마지막 주자로 노래자랑에 참가해 당당히 ‘본선진출증’을 거머쥐었다.

재희 씨는 “합격해 기쁘긴 하지만 더 큰 무대에 서야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며 “이번 예선 무대 한번으로 심폐소생술 알리면 안 되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더 큰 무대에서 심폐소생술을 알릴 절호의 기회라는 기자의 격려에 재희 씨는 “내일부터 또 연습 해야겠다”고 말했다.

때로는 두려움이라는 자신과의 싸움도 이겨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대의를 위해 용기를 내는 이들을 보면서 ‘진정한 봉사의 정신’을 느낀다.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에 힘입어 심폐소생술을 온 국민이 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왼쪽부터) 합격증을 들고 기념 촬영에 나선 동작 소방서 의용소방대원 이명주 차순임 조재희 유영이 나찬순 최양옥(여성 대장) 서원규 (홍보팀장) 김숙자 씨.ⓒ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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