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 지나는 유조선. (출처: 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 지나는 유조선. (출처: 연합뉴스)

미국·이란 갈등 속… 정부 ‘진퇴양난’

최근 ‘이란 핵합의’ 美탈퇴로 갈등 시작

호르무즈 봉쇄 우려엔 “미국 해결 가능”

전문가 “정부, 파병 외 다른 방식 검토할 듯”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이란이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를 상대로 보복 공격에 나서는 등 미국과 이란 간 보복적 군사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요청으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검토해 온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그간 미국은 이란이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침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경우 즉각 반격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미국의 초강경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전쟁의 암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은 이란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자칫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위험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간 최근 불거진 갈등은 2018년 5월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를 탈퇴하고 이란에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 세컨더리 보이콧, 즉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들까지 제재 대상에 오르는가 하면 이란의 원유 수출도 어려워졌다. 아울러 유럽 국가조차 미국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자 이란의 불만은 커져갔고 갈등은 증폭됐다.

이란은 급기야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고, 이에 맞서 미국은 안전한 항행을 확보하기 위해 동맹국을 중심으로 ‘호위 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황까지 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30%가 지나는 요충지다. 그중 가장 좁은 구간이 국제법상 이란의 영해에 속해 사실상 이란군이 통제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지난해 6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유조선에 대한 피격사건이 잇따르자 그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민간선박 보호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동참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요청한 상태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만 해도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긍정적인 검토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 수행 중인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는 관측이다.

이달 중순 아덴만 해역에 도착하는 청해부대 소속 31진 왕건함(DDH-Ⅱ·4천400t)이 2월부터 강감찬함과 임무 교대해 대(對)해적 작전을 하는데, 왕건함의 작전지역을 아덴만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 출항【부산=뉴시스】 13일 오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서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DDH-979·4400t급)이 출항하고 있다. 함정 승조원을 비롯해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요원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링스 해상작전헬기를 운용하는 항공대, 해병대·의무요원 등으로 구성된 경계·지원대 등 총 300여 명으로 편성된 청해부대 30진은 아덴만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29진 대조영함(4400t급)과 9월 초 임무를 교대한 이후 내년 2월 말까지 약 6개월 동안 우리 선박을 보호하는 임무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청해부대 30진은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에 참가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3일 오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서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DDH-979·4400t급)이 출항하고 있다. 함정 승조원을 비롯해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요원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링스 해상작전헬기를 운용하는 항공대, 해병대·의무요원 등으로 구성된 경계·지원대 등 총 300여 명으로 편성된 청해부대 30진은 아덴만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29진 대조영함(4400t급)과 9월 초 임무를 교대한 이후 내년 2월 말까지 약 6개월 동안 우리 선박을 보호하는 임무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청해부대 30진은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에 참가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최근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 공격으로 사망하고 이란이 보복에 나서는 등 양국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우리 정부의 기류도 달라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8일 “정부 내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현재 정부는 미국과 이란 사태를 포함하여 중동지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유사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변수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정부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란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의 하나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압박에 대해 고삐를 죌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이란 케르만주(州) 담당 혁명수비대 골라말리 아부함제 사령관이 지난 4일 ‘이란이 미국에 어떻게 보복할 수 있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호르무즈해협, 오만해, 메르시아만을 지나는 모든 미국 선박은 우리가 타격할 수 있는 사정권 안”이라며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한 데 따른 반응이다.

권안도 전 국방부 전략기획실장은 이날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란이 미 우방에 대해 오늘 공개 경고하는 등 외교전을 강화해 갈 것으로 보지만, 미국의 막강한 능력으로 봤을 때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일 것이다. 정부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설사 정부가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변경하는 방식의 파병을 추진한다 해도 이 지역의 전운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회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달리 새로운 부대의 해외 파병이 아닌 기존 부대의 작전지역 변경은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돤다는 해석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어찌됐든 정부로서는 난항을 겪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이나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공조 등을 고려하면 미국의 요청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국 원유수송선의 70~8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등 실익이라는 차원에서 이란과의 관계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양상이다.

다만 정부가 파병 카드를 완전히 접을 수는 없는 만큼 양국 간의 관계를 고려한 다른 방식, 즉 호르무즈 해협 방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권 전 실장은 “새로운 파병문제, 기존 전력을 전환하는 방안, 다른 방법 강구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국민 정서상 파병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파병 이외의 방법으로 미군의 정보활동을 돕는다든지, 비용일부를 보존해준다든지,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든지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 국회의원들이 7일(현지시간) 테헤란 국회의사당에서 미국의 폭격으로 숨진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사진을 들고 미국을 성토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란 의회는 미군과 미 국방부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출처: 뉴시스)
이란 국회의원들이 7일(현지시간) 테헤란 국회의사당에서 미국의 폭격으로 숨진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사진을 들고 미국을 성토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란 의회는 미군과 미 국방부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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