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권영하

 

우리 집 아파트 16층 거실에 노린재 가족이 찾아왔다

딸애는 종종걸음으로 방에 숨었고

아내는 살충제와 함께 달려왔다

세 마리였다, 살충제를 뿌리려다

이 가족의 살아온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식물의 즙을 빨아먹으며 열었던 가족회의를, 불빛을 보고 층마다 창문을 두드린 팔을, 방충망에 매달린 애원의 눈빛과 다리의 근력을

나는 샷시 틈새로 들어와 거친 숨을 내쉬는 노린재가 되어 보았다

우리 가족도 불빛을 찾아 수직벽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좁은 틈을 지나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살충제를 발사하면 나와 아내는 이들의 끝을 알지만

이 가족은 서로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아내에게 살충제 대신 플라스틱 통을 달라고 했다

그 통에 노린재 가족을 휴지로 살살 쓸어담았다

지친 팔다리와 꿈이 다치지 않도록 통을 들고 엘리베이터 1층을 눌렀다

돌아가서 식물의 즙을 빨아먹으며 가족회의를 다시 열어보라고

 

 

권영하
권영하

▷ 2019년《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

▷ 2020년《강원일보》신춘문예 당선

▷ 2012년《농민신문》신춘문예 당선

▷ 2012년《한국교육신문》교단수기 당선

▷ 시집『알몸으로 자기보기 1,2』(고글 및 영운기획)

▷ 현재 점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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