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한때 10억 만들기 열풍이 불었던 시대가 있었다. 10억원 정도 자산이 쌓이면 은행 이자로 생활을 하거나 혹은 4층짜리 주택을 지어서 꼭대기층에 거주하고 나머지를 임대로 돌리면 돈 걱정 없이 노후를 비교적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부자의 상징과도 같은 거액의 기초자산이었다. 

직장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10억 만들기 인터넷 카페를 가입하고 종자돈을 만들어서 목돈을 만드는 지혜를 공유하고 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자동차를 사지 말고 아끼고 절약하는 습관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직장에서 버는 근로소득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최고의 재테크 비법 중 하나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저금리 시대는 기존 재테크 지형을 크게 바꿔 놨다. 10억원을 은행에 예금할 경우, 한 달 500만원 정도의 이자를 받던 퇴직자는 한 달에 100만원 남짓으로 수령액이 줄었다. 주식시장은 수십 년째 박스피(코스피와 박스권의 합성어로 종합주가지수가 저점을 1900선에서, 고점은 2200선 사이에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현상)에 머물고 있다 보니 주식 투자해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는 반짝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한 때 잘나가던 중국펀드 수익률이 반토막 나면서부터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은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에 유입됐고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전세제도 탓에 소액의 투자금으로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게 가능했다. 이른바 갭투자가 성행했다. 이런 부동산 광풍에 그동안 내 집 마련에 관심이 없던 20~30대까지 가세했다. 청약 가점이 낮아 신규아파트 당첨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거나 소액 자본으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젊은이들도 급증했다. 

집이 거주보다는 투자자산으로 인식되면서 강남 등 일부 서울 지역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현재 서울아파트 평균 중위가격도 8억 8000만원으로 9억원에 육박한다. 월급 420만원의 중산층이 한 푼도 안 쓰고 17년 이상 모아야 살 수 있는 규모다. 무주택자에게 서울 아파트는 이제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가격 급등보다 더 안타가운 것은 바로 노동가치보다 자산가치를 추구하는 현상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시장이 이상과열 현상이 이어지자 현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18번에 걸친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잠시 휴지기를 거친 이후 또 다시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대출, 세제, 청약과 가격 규제 등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규제책이 나왔다. 하지만 잠시 쉬어 가는 휴화산일 뿐 언젠가는 다시 폭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1100조원에 달하는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의 향방이다. 지금도 규제를 피한 지역부동산으로 흘러가는가 하면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확대로 청약시장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교육제도 개편과 맞물려 전세시장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전셋값이 불안할 경우, 추가 대책까지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역사는 반복되듯이 규제가 시장을 이긴 경우는 없다. 정부가 현재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재정비하고 어떻게 하면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분산시키고 투자로 유도할 수 있는지 해법을 심사숙고해야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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