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상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지난해 1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새 총리후보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내정했다. 국가권력서열 2위인 국회의장출신이 5위의 총리에 내정된 것은 건국 이후 최초의 사건(?)이라며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러한 총리인선에 대해, 의회를 상징하는 국회의장출신이 행정부 2인자인 총리가 된다는 것은 삼권분립원칙에도 반하며 의회무시의 결과라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국무총리의 헌법상 지위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국무총리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신임에 기초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국회 다수파의 신임에 기초해야 한다. 즉 국무총리는 헌법상 국민적 정당성의 두 축인 대통령과 국회로부터의 이중의 신임에 기초하고 있다. 국무총리는 재임 중에도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는 국회의 국무총리해임건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국무총리를 단순히 대통령의 신임에만 기초해 이해하는 것은 무리이다.

현행 헌법에서 임기 5년의 대통령과 임기 4년의 국회의원은 일치될 수 없고, 더구나 대통령은 국회해산권도 없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다수파는 항시 불일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직의 여야교체, 국회다수파의 여야교체에 따라 국무총리의 지위와 위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무총리의 위상을 강화하는 한 방안으로 책임총리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책임총리제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제도로서 국무총리가 헌법에 명시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크게는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을 국무총리에게 분산하는 것으로 총리가 행정에 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있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에게 국무위원의 임명제청 및 해임건의를 할 수 있다. 행정각부의 장 역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국무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현행 한국의 대통령제에서는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행정부 역시 대통령이 원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조직되며 국무총리는 이를 받아들이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국무총리가 헌법에서 규정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진정한 책임총리제는 국무총리가 실질적인 인사권을 가지므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국무총리의 의지대로 행하며 대통령은 국무총리가 제안하는 인물을 수용해야 된다. 또한, 국무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경제나 사회 등 국내 정책에 관한 부분을 전담할 수도 있다. 이때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등을 담당하여 국무총리와 권한 및 업무를 분담하는 분권형태로 국정을 수행하게 된다.

책임총리제를 실현하려면 대통령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헌법에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임명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권한을 이양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국무총리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법적으로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이 모호한 데다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한 만큼, 대통령의 의지가 없으면 책임총리제는 사실상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이번의 인사를 계기로 책임총리제를 통한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과 독선을 막고, 이러한 행정부의 분권이 사법부(대법원과 헌법재판소)와 입법부(상하양원제)의 분권을 견인하는 동인으로 기능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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