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참으로 지긋지긋했던 ‘공명지조(共命之鳥)’의 일 년, 2019년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돌이켜보면 공명지조의 운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민생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나라는 둘로 갈라졌으며 가는 곳마다 탄식과 저주의 외마디로 가득 찬 ‘분노의 세상’이었다. 그러니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상식인들 제대로 통할 리 없었다. 오직 내편이냐, 네편이냐의 싸움질이 대세를 갈랐다. 2019년의 한국정치는 이미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명지조가 죽었으니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다. 그래서 아주 상스럽다는 경자년(庚子年) 한 해를 소망하는 바람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치’가 그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21대 총선도 예정돼 있으니 이래저래 2020년 한국정치는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도 공명지조는 잘 죽었다.

한국정치의 근본적 변화는 먼저 ‘권력구조의 변화’부터 고민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그 어떤 변화도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무한 정쟁과 진영 싸움, 저질 언론들의 선동과 검찰의 변절 등은 결국 ‘대통령 권력’을 향한 편가르기에 다름 아니다. 정치가 제 자리에 바로 설 수 있는 토양이 아닌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개헌에 집중했던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개헌의 핵심을 잘 못 짚는 바람에 별 소득도 없이 ‘그들만의 고민’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낼 수도, 더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는 21대 국회가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마침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그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 후보자가 2020년 새해에는 국민통합을 기원한다고 말 한 뒤 “협치를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들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치를 위한 나름의 복안’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회 내 몇 안 되는 ‘진성 의회주의자’인 정세균 후보자는 그의 정치역정 자체가 ‘대화와 타협’의 길이었다. 그런 정 후보자가 최근 국회 내 폭력사태와 둘로 갈라진 정치현실을 보면서 얼마나 상심하고 비통해 했을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오죽했으면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어서도 ‘협치’를 강조하고 그를 위한 ‘복안’까지 준비했을까 싶을 정도이다. 정 후보자의 지적대로 한국정치는 ‘협치의 일상화’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도 정 후보자가 준비한 그 복안이 참으로 궁금하다.

그러나 협치의 일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대신 협치를 근본으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로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개헌’이 근본적 해법인 셈이다. 마침 21대 총선이 예정돼 있으니 어느 때보다 현실성도 높다. 이와 관련해서도 정세균 후보자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지난달 19일 한 강연에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진영 간 패싸움 수준에 머문 지금의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개헌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세균 후보자의 개헌론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6월 20대 국회의장으로서 국회 개원사를 통해서도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후에도 국회의장으로서 개헌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뜨거웠던 개헌 정국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서 다하지 못한 개헌론, 이제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행정부를 책임질 국무총리로서 그 주역을 맡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마침 21대 국회와 맞물리는 타이밍도 다행스럽다. 뭔가 거대한 변혁의 파도가 저 멀리서부터 조금씩 밀려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세균 후보자가 국무총리에 임명되면 개헌론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진 우리 정치권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워낙 팽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각 정당도 개헌에 대한 입장을 다시 정리할 수밖에 없다. 시점도 문재인 정부 후반기와 21대 국회 전반기가 겹친다. 국민적 의지가 모아지고 21대 총선 공약으로까지 이어진다면 21대 국회는 개헌을 논의하기에 비교적 적절하다. 정 후보자가 그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여서 더 없이 좋은 타이밍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대 전반기 국회가 ‘개헌 국회’로 간다면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행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도 사실상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치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몇 개의 정당이 손을 잡는 방식인 이른바 ‘한국형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개헌’이 공동의 당면 목표요, ‘협치’는 그 열매가 될 것이다. 그 대신 연립정부에 참여한 정당은 ‘실질적인 여당’으로서 문재인 정부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2022년의 차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감안한다면 얼마든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후보자가 말한 협치를 위한 ‘복안’도 이런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치’를 위해서, ‘정치의 복원’을 위해서는 이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성 의회주의자’ 정세균의 선택이 과연 난마처럼 얽힌 한국정치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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