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신년 초하루, 친구들과 올해의 국운을 가늠하는 괘를 뽑아보았다. 역경 13번째 괘인 천화동인 구오효가 나왔다. 하늘의 태양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형상이다. 괘의 전체 상황을 설명하는 괘사에서는 ‘동인우야(同人于野), 형(亨). 이섭대천(利涉大川), 이군자정(利君子貞)’이라고 했으며, 구오효의 효사에서는 ‘동인선호(同人先號), 도이후소(咷而後笑). 대사극상우(大師克相遇)’라고 했다. 동인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가리킨다. 요체는 ‘인(人)’에 있다. 동인의 인은 타자를 가리킨다. 자기를 가리킬 때는 기(己), 아(我), 오(吾), 자(自)를 사용한다. 역경의 표현은 매우 정교하다. 동인의 주체인 자기는 감추고, 대상으로 타자인 인을 지적한다. 동인의 형식은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포용이라는 의미이다.

야(野)는 제도와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외부를 가리킨다. 괘사에서는 야권을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동인의 대상으로 삼아야 만사형통이라고 지적한다. 대천은 험난함을 상징한다. 동인을 이룩하면 어떤 험난함도 극복할 수 있다. 고형(高亨)에 따르면 정(貞)은 점복(占卜)의 결과에 따른다는 의미이다. 군자는 실력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권력의 주체는 이 결과를 믿어야 한다. 타자와의 동화는 나와 외부와의 재조합이므로 동인을 통해 형통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지난해에는 극심한 혼란이 발생했다.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는 문제를 두고 국민들은 크게 양분돼 광장으로 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한 진영논리였다. 냉정한 지성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으며, 대립하는 쌍방은 출구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결국 정치권의 무능함 때문에 검찰이 가장 정치적으로 변했다. 이는 검찰의 잘못이 아니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검찰이 정치와 독립해 국법을 준엄하게 준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 상황이 전개된 까닭은 정치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동인괘에서는 하괘에서 중을 차지한 육이효에 주목한다. 육이효는 음의 자리에 있으므로, 당위(當位) 또는 득위(得位)했으며, 지존(至尊)인 상구효와 상응(相應)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양효와 상비(相比)해 타자와의 동화가 가능하다. 초지일관할 수 있는 군자인 육이효는 굳센 의지와 신념으로 멸사봉공할 모든 상황을 갖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종(同宗)과 하나가 된 것 같아서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관건은 상응하는 구오효와의 동인이다. 구오효는 동인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을 설명한다. 육이효와 구오효의 동인은 순탄하지 않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장이 난무한다. 그러나 불협화음은 나중에 즐거운 웃음으로 바뀐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다시 엄청난 충돌이 발생한다. 충돌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이러한 동인괘의 상황에 감탄한다. 그는 군자가 되는 길을 말과 행동의 일치로 규정했다. 말은 입을 닫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침묵과 자기주체적인 표현(語)의 조화이고, 행동은 나아감(出)과 일정한 위치의 고수(處)의 조절이다. 동인은 상대를 설득하거나 강요해 나의 입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입장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양보가 주목적은 아니다. 묵어(默語)와 출처(出處)를 통해 양자가 모두 수긍하는 공동의 길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계사전에서는 ‘기리단금(其利斷金), 기취여란(其臭如蘭)’이라고 했다. 동인이 이루어져 둘의 힘을 합칠 수 있으면 그 예리함은 쇠도 자를 수 있으며, 마음이 합쳐서 내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했다. 문제가 있으므로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의 출현도 가능하다. 기대와 소망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두가 냉정한 눈으로 조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난초의 향기가 어디서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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