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얼굴 없는 천사’ 성금 훔쳐 구속된 도둑들. (출처: 뉴시스)
전주 ‘얼굴 없는 천사’ 성금 훔쳐 구속된 절도범. (출처: 뉴시스)

6천만원 담긴 기부금 박스 훔쳐

“도주우려 있어 구속영장 발부”

도둑들 “개인사업 위해 훔쳤다”

“이 사건, 신뢰사회구축 큰상처”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우리 사회에는 익명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얼굴 없는 천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같은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노려 돈을 훔친 이들이 나타나 공분이 일고 있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북 전주시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수천만원의 성금을 훔쳐 달아난 30대 피의자들이 구속됐다. 전주지법 최정윤 판사는 전날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35)씨와 B(34)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와 B씨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께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뒷편 희망을 주는 나무 주변에 얼굴 없는 천사가 놔둔 6000여만원이 담긴 기부금 박스를 훔쳐 달아났다.

“성금이 사라진 것 같다”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주민 등을 상대로 한 탐문 수사와 목격자 진술 및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26일부터 주민센터 주변에 세워져 있던 SUV 차량 1대가 수상하다는 주민 제보와 함께 해당 차량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았다.

경찰은 충남경찰청과 공조해 충남 논산과 대전 유성에서 이들을 붙잡았다. 또 용의자들이 갖고 있던 기부금 6000여만원을 회수해 사흘 만에 원래 기부하려고 했던 곳인 노송동주민센터에 돌려줬다.

A씨 등은 범행 전날 자정 무렵 논산에서 출발해 오전 2시께 주민센터에 도착한 뒤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난 오전 10시까지 8시간 동안 차량 내부에서 계속 대기했다.

이들은 전주에 오기 전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화장지에 물을 적셔 번호판을 가려 완전 범죄를 꿈꿨다. 하지만 전주에 오기 이전에는 번호판을 가리지 않아 주민에게 덜미를 잡혔다.

CCTV에 찍힌 ‘얼굴 없는 천사’ 성금 훔치는 절도범. (출처: 연합뉴스)
CCTV에 찍힌 ‘얼굴 없는 천사’ 성금 훔치는 절도범. (출처: 연합뉴스)

경찰에서 밝힌 A씨와 B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이 시기에 ‘얼굴 없는 천사’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컴퓨터 수리점을 한 곳 더 열기 위해 기부금을 훔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시작해 단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천만원이 담긴 종이박스를 몰래 놓고 사라진 인물이다. 지난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 4000원을 두고 간 것을 시작으로 그의 익명 기부는 해마다 연말을 기점으로 이뤄졌다.

그는 매년 동전 등을 채운 돼지저금통과 A4용지 박스에 5만원권 뭉치, 메모 글을 함께 남겼다. 그가 기부한 성금은 그동안 전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노송동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됐다.

경찰이 회수한 성금이 주민센터에 전달되면서 그가 올해까지 20년 동안 기부한 돈의 총액은 6억 7000여만원에 이른다.

사회 일각에서는 선의의 마음으로 시작된 기부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에 발생한 사건의 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반사회적 의식이 깔려있다”며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름다운 마음들을 해치는 범죄가 우리 사회를 더욱 불신하게 만든다”며 “(이번 범죄는) 결국 개인적인 금전 욕구 때문에 우리 사회를 지탱해준 기부천사들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상당히 큰 상처를 준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범죄는 신뢰 사회를 구축하는 데 매운 큰 상처를 줬다”며 “다른 절도범죄보다 더욱더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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