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미국 의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한 영화가 있다. 2002년에 만들어진 <존 큐(John Q)>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줄거리를 요약하면, 심장병에 걸린 아들을 둔 한 평범한 저 임금 노동자가 의료보험 가입자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술비 25만 달러 중 30%를 현금으로 당장 지불해야만 자신의 아들이 수술 대기자 명단에 올라 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국 극단적으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병원 응급실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병원과 경찰에 협박을 하며 인질극을 벌이는 것.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은, 단 한 가지. 아들을 수술 대기자 명단에 올려 제대로 된 수술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미국 의료계의 현실과 민영 의료보험의 폐해에 대해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된다.

가격이 저렴한 보험에 들어있는 사람도 제대로 된 치료 혜택을 받기가 힘들다는 게 이 영화에서 보이는 문제점인데, 그렇다면 실제 미국에서 응급 상황 시에 병원은 어떠한 조치를 취할까? 그래도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있다면, 적어도 죽어가는 사람까지 병원 밖으로 내 보내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실제 매사추세츠주의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병원에서 고려하는 무료 치료가 가능한 응급 상황이란, 24시간 이내에 적절한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하면 바로 사망할 수 있는 정말 그야말로 총을 맞았다거나 하는 숨넘어가기 직전의 극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도 어느 나라이건, 물론 돈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의사가 있기 마련이어서 이런 응급 상황에서 긴급 치료를 해줄 수도 있다는 모험적인 기대를 걸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의료진에 의해 환자가 죽지 않을 상태라 판단이 되는 순간, 정말 죽을 것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더라도 치료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이 없으면, 목숨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이란 얘기인데, 정말 기적적으로 돈 많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치료비를 후원해주거나 개인 보험을 바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는 한 목숨부지하기가 힘들다는 결론이다.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에서 내쫓겨 나가게 되는 이 상황은 위의 영화에서처럼,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철저한 자본주의사회 미국은 개인이 얼마짜리의 보험을 샀는지에 따라 그 의료치료 수준도 천차만별로 등급이 매겨지고 달라진다.

필자도 예전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찾아 갔었다. 그런데, 필자의 보험기간도 마침 그때 끝이 난 터라 더 이상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바로 새로운 보험을 사지 않으면, 병원치료는커녕, 어디가 아픈지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혈압체크 등의 건강확인조차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필자는 아픈 몸을 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간단한 약을 사먹으면서 필자가 속으로 다짐한 것은 ‘남의 나라에서는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필자뿐일까? 그리고 만일 단 한 번이라도 크게 다치거나 아프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몸도 이런 필자의 마음과 사정을 잘 아는지, 그 이후부터는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사람이 날 아픈 것도 아니고, 내 생명을 걸고, 돈 내기를 하는 것 같아 아주 기분까지 나빠지는 이 개인 보험금은, 지나가다가 얘기만 들어도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건가? 싶은 생각에 화가 치밀기도 한다. 이렇게 미국은 개인 보험을 들어 놓지 않으면, 다치거나 아플 때에도 병원 혜택을 받기가 힘들다. 이것이 민영화된 의료보험을 사지 않았을 때 겪게 되는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어려운 모습의 한 예이다.

이 영화를 보면, 미국 정부의 의료사회보장제도 시스템의 병폐를 고발하는 미국인들의 불만을 잘 읽어 볼 수가 있다. 미국 시민도 아닌 필자까지도 화가 나게 만들어버린 이 영화는 철저하게 미국의 건강보호는 개인의 것이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민영화가 되어버린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철학은 국민 개개인이 정부로부터 모든 것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어서 미국 사람들의 대개는 반정부주의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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