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최악의 한 해가 지났다. 특별한 대외 위기가 없는 가운데 성장률은 추락했고 물가는 떨어지면서 일본식 장기불황,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급속히 위축되는 데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와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왔던 제조업 경쟁력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IMF 위기를 질병에 비유한다면, 급성질환이었다. 폐부를 도려내는 수술로 단기간 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반면에 현재의 위기는 고혈압과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에 해당한다. 예전과 같은 수술이 아니라 체질을 개선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는 성인병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중요하듯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완만한 경기 회복 기대감이 크다. 정부는 512조원이 넘는 슈퍼예산을 조기에 투입해 경제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돈 풀고 투자 유도하고 수출과 내수가 좋아지면 올해 2.4% 성장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경제가 2017년 3.1%를 고점으로 2018년 2.7%, 지난해는 2.0%로 바닥을 다지고 올해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올해 우리경제가 낮게는 1.7%, 높게는 2.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간값은 2.0%다. 한마디로 올해 우리경제도 지난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경제가 심리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부정적 전망을 할 필요는 없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정부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경제정책은 바로 투자다. 공공투자와 민관 투자를 합쳐 총 100조원에 투자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투자 계획이 현실화되면 지난해 7.7% 큰 폭으로 줄었던 설비투자가 올해는 5.2% 증가세로 전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압들의 투자심리는 여전히 냉랭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2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기업경영 전망을 조사한 결과, 국내기업의 65%가 현재 경기 상황을 장기형 불황이라고 인식하고 올해 긴축경영 계획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기업들은 올해 우리경제가 1.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막대한 제정을 투입해도 민간기업의 투자로 연결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올해 우리 경제 최대변수는 미중 무역전쟁과 차이나리스크 등 대외변수다. 지난해 말 1년 넘게 지속됐던 미중 무역전쟁이 1단계 합의에 극적으로 성공했지만 2, 3차 협상이 마무리돼야 실질적인 불확실성이 제거된다.

하지만 미중 간 2, 3차 무역협상은 패권전쟁의 클라이막스다.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기업에 주는 보조금을 중단하고,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 지적재산권 보호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제조업 2025’ 기술 굴기를 선언한 만큼 미래 먹거리 첨단산업분야에서 만큼은 물러설 수 없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최대교역국 중국은 올해 6% 성장 달성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G2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신흥국 등 수출시장 다변화에 나서야하는 이유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활용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밝힌 ‘산업, 노동시장, 공공부분, 인구구조와 규제’ 등 5대 분야 규제개혁 방안은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정부의 실행의지와 지속성이다. 정부는 새로운 산업이 태동할 수 있도록 규제와 진입장벽을 해소하고 기존산업과의 마찰을 중재하는 역할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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