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희극’을 읽는 자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바로 죽음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수도승이라면 절대적으로 거룩해야 한다는 원로 수도승의 철칙에 따라 수도원에서 웃으면 안 된다. 이곳에서 웃음은 이율배반적이다. 더 나아가 저급하고 죄로 가득해 삶에 해로운 존재다. 따라서 <시학> 2권은 철저히 금서로 분류돼 어느 누구도 읽지 못하게끔 장서관에 비밀리 숨겨졌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든 책을 찾아낸 젊은 수도승들은 몰래 읽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은 중세 수도원이다. 여든이 된 아드소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버지의 권유로 수도원에 들어간 아드소는 현자인 윌리엄 신부를 만난다. 윌리엄 신부는 프란체스코파의 탁월한 논객으로 교리회담을 위해 문제의 수도원을 찾는다. 하지만 매일같이 수도승이 죽자 이 사건을 의뢰 받게 된다.

소설은 종교의 맹신적 믿음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시절의 이야기다. 종교와 교회의 입장에서는 화려했던 장미가 꺾이는 시기였던 것이다.

종교적 입장을 철저히 고수하고 맹목적인 신앙을 내보이는 구세력과 철학적 이성을 중시하는 젊은 수도사들 간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을 터. 원장 수도승은 그리스 철학에 관한 책들이 보관된 장서관의 출입을 철저히 막는다. 아울러 일반인의 경우 조금이라도 부도덕하다고 판단되면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았다.

소설 전반적으로 놀라울 만큼 치밀하고 예리하다. 복잡한 수도원의 내부 구조를 묘사한 것도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의 심리, 사건 전개 모두가 완벽하다. 이러한 구성이 움베르토 에코의 방식이다. 20세기에 작품을 쓸 당시 4~5세기 전의 생활을 이토록 생생하게 쓰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특히 폐쇄적인 수도원과 존재하지도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부합시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전공 기호학 등 지식을 쏟아냈다. 세간에는 <장미의 이름>을 두고 ‘책 중의 책’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책은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세계에서 2000만 부 정도가 판매됐을 정도니 호평만으로 부족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신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사실 <시학> 2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가상으로 설정한 책이다. 한 권으로 전해오는 <시학>은 비극을 설명하고 있으며, 말미에 ‘희극에 대해 논해보자’라고 화두만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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