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만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충격적인 사건들로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었다. 본지는 연말을 맞아 ‘유치원 개학연기 사태’부터 ‘화성연쇄살인범’, 국민을 둘로 나눈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올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10대 이슈를 키워드로 재조명해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자사고 재지정에서 취소 위기에 놓인 8곳 학교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재지정 탈락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자사고 재지정에서 취소 위기에 놓인 8곳 학교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재지정 탈락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대통령의 공약 ‘자사고 폐지’

일선교육청 엄격한 평가적용

자사고 “평가기준 인정 못해”

당정 논의 후 교육당국 결단

“2025년 일반고로 일괄전환”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올해 벌어진 교육계 사건들 중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논란’은 특권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교육당국의 입장과 ‘교육 선택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자사고 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으로, 학부모들의 혼란이 크게 야기됐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연초부터 시작된 이 논란은 자사고 측이 헌법소원을 계획하면서 연말은 물론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자 시절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마디로 자사고 폐지를 약속했던 것이다. 이같은 기조에 함께하는 교육청들은 엄격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통해 기존 목적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자사고들을 모조리 정리하고자 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자사고는 5년마다 운영성과평가를 받도록 돼 있다. 평가에서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될 경우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재지정 평가 놓고 갈등 시작

올해 3월 재지정 평가 계획이 알려지자 교육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올해 기준 전국 자사고 42곳 중 서울 13개교와 지방 11개교 등 모두 24개교가 자사고 재지정을 위한 평가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평가는 각 교육청의 평가표준안에 따라 진행되고, 각 학교가 자체평가보고서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교육청이 현장평가를 하며, 최종 100점 만점에 70점(전북은 80점)을 넘지 못할 경우 일반고로 전환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자사고 측은 즉각 반발했다. 교육청들이 ‘자사고 폐지’를 목표로 평가 기준을 잡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서울에선 올해와 내년에 운영평가가 예정된 22개교가 평가 거부의사를 밝혔다. 전북에선 평가 기준점이 문제됐다. 전북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평가 기준점이 교육부 권고기준인 70점보다 10점이 더 높았다. 이에 상산고와 학부모·동문은 전북교육청이 자사고 폐지를 염두에 두어 평가점수를 높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기도에선 안산 동산고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가 릴레이 시위와 단식 농성 등을 하면서 평가지표를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3월 15일 오후 '총궐기대회'를 위해 전국에서 집결한 상산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전주시 완산구 상산고 교정에서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계획에 반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3월 15일 오후 '총궐기대회'를 위해 전국에서 집결한 상산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전주시 완산구 상산고 교정에서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계획에 반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자사고 “일방적 결정” 반발

자사고 측은 크게 반발했으나 교육청들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압박만 커지자 결국 평가에 응하게 됐다. 지난 6월 20일 전북교육청은 상산고가 자사고 재지정 평가기준 점수(80점)에 미달하는 79.61점을 받았다며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경기 안산 동산고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 기준점(70점)에 미달해 자사고 지정 취소 위기를 맞았다. 교육부에서 자사고 취소가 확정되면 안산 동산고는 내년 2월 29일 자로 자사고 지위가 만료돼 일반고로 전환될 상황이었다.

전북 상산고와 경기 안산 동산고에 이어 부산 해운대고까지 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이 내려지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 등 후폭풍이 연이어 일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서울에서 일어났다. 서울시교육청은 13개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평가를 진행 후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대부고, 중앙고, 한대부고 등 8개교에 대한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에 서울 자사고 학부모들은 집회를 열고 “재지정 취소 결정은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사고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교육청이 판단한 것과는 달리 입시위주가 아니며 아이들의 끼와 재능을 기르는 데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관내 자립형사립고 13개교에 대한 운영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관내 자립형사립고 13개교에 대한 운영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9

◆자사고 존재 놓고 학부모 혼란

서울을 비롯한 전국 시·도교육청들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가 나오자 공은 교육부로 넘겨졌다. 고심을 거듭하던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이 결정한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에 부동의하기로 지난 7월 26일 결정했다. 전북교육청의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 지표가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고 평가적정성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 8월 2일 서울의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8개 자사고와 부산 해운대고에 대해선 자사고 지정취소를 결정했다. 교육부의 결정으로 서울지역은 자사고가 22곳에서 13곳으로 감소하고, 부산·경남지역은 자사고가 아예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스스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경문고를 제외한 9개 자사고가 법적 대응에 돌입하겠다며 반발했다. 실제로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같은달 8일 서울행정법원에 자사고 지정취소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해당 처분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같은달 30일 평가 점수미달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8개 자사고가 낸 지정취소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부산 해운대고와 경기 안산동산고가 각각 부산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취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에 올해 운영평가에서 점수미달로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모든 자사고는 사실상 지위를 유지하며 내년 신입생을 예년처럼 선발할 수 있게 됐다. 자사고 존재 여부를 놓고 아이를 어떤 학교에 보낼 지를 고민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또 다시 혼란을 겪게 됐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일반고 황폐화” 비판 여론 조성

상황이 이같이 되자 이번엔 정부와 여당이 나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와 청와대는 2025년에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우고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안건에 따르면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2025년 3월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계획안을 제시했다. 또한 내년부터 이들 학교를 상대로 운영성과 평가를 실시하는 대신 자발적인 일반고 전환을 유도할 계획도 세웠다.

교육부는 일괄 전환까지 5년 이상 남은 상황이기에 재학생·학부모 등과의 직접 갈등은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교육부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일반고로의 일괄 전환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가운데 교육부는 지난달 5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자사고를 비롯한 외고, 과고 등 특목고를 겨냥해 “조사 결과, 고교서열화 현상이 입학전형 단계별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자사고와 특목고는 중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따로 뽑아가 일반고를 황폐화 한다’는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또 자사고와 특목고의 비싼 학비가 교육기회 불평등을 야기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7

◆교육부 ‘일반고 전환 계획’ 선언

당정 논의를 통해 나온 결론과 여론의 동력까지 얻게 된 교육부는 지난달 7일 “고교교육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이 입시교육에 치우쳐 있어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문재인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체 고교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2025년 3월에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이번 개정안이 적용될 예정”이라며 “전환되기 전에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학생 신분이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으로 발표했던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규칙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예고했다. 이에 외고·자사고·국제고는 크게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자사고 측 “헌법소원 낼 것”

정부의 발표로 논란은 사그라드는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일반고 전환 방침에 반발하며 공동대응을 선언했던 전국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들이 일반고 일괄전환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혼란을 예고했다.

전국자사고외고국제고교장연합회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끝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한다면 관련된 학교법인들은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가 정당한지 헌법소원을 제기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교육법정주의에 합당한 절차·기준으로 고교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며 “고교학점제 등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 결과를 확인한 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내달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 외고들은 졸업생 22명으로 변호인단을 꾸렸고 청심국제고는 자사고와 함께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교육계 일각에서 나오는 ‘국회의 입법 과정을 피해 시행령 개정으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다’는 지적에 대해 교육부는 “이들 학교는 시행령을 바탕으로 설립된 것”이라며 “일반고 전환도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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