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자유한국당이 ‘비례한국당(비례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다만 ‘비례한국당’이 이미 중앙선관위에 등록돼 있는 만큼 당명은 추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아무튼 오는 21대 총선에서 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를 전담하는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는 의지는 거듭 확인한 것이다. 이는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 과연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연동형 비례제의 틈새를 파고든 ‘묘수’가 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뭉개버리는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양날의 칼’이라 하겠다.

우리 헌법은 정당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8조 1항). 따라서 정당법 요건만 갖춘다면 비례당 창당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관건은 비례당의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는 곧 여론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바로 비례당 창당에 대한 ‘국민여론’과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도 비례당 창당이 현실화 된다면 21대 총선의 최대 이슈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사실 비례당 창당은 한국당 입장에서도 그 결과를 미리 예상하기 어려운 하나의 ‘모험’일 것이다. 현재 108석의 거대 정당인 제1야당이 비례대표 몇 석을 더 얻기 위해 그 이름조차 생소한 위성 정당을 창당하고 그 사실과 관련해 국민적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기대하는 만큼 여론이 따라 준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한국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표심이 그대로 비례당으로 옮겨가서 30% 안팎의 정당 득표율을 얻는다는 계산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묘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모른다. 오늘 여론이 좋아도 내일은 뒤집힐 수 있으며,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도 막상 투표함을 열어 보면 예상 밖의 ‘이변’이 속출하기 일쑤다. 특히 한국정치는 그 이변이 더욱 심하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국당 지지율이 21대 총선에서도 30%대를 유지할 것이며 또 그 지지율이 정당투표에서도 그대로 비례당으로 옮겨 갈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 ‘궤변’에 가깝다. 바보들이 아니라면 이런 계산법은 사실 언급조차 할 수 없다. 국민을 바보로 보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비례당 창당은 우선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비트는 ‘꼼수’에 가깝다. 불법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방식도 아니라는 뜻이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곧 외연 확장의 한계를 말한다. 따라서 30%대 지지율을 그대로 비례당에 밀어 준다고 하더라도 지역구 선거는 30%대 득표율에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선 당선이 어렵기 때문이다. 비례당과는 무관하게 지역구 선거에서는 득표율 확대 즉 외연 확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당의 지역구 선거와 비례당 창당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비례당에 대한 ‘국민적 불매운동(낙선운동)’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잖아도 정치판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제1야당에 의한 선거정치 왜곡과 위성정당 논란은 국민적 감정을 폭발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크리스마스 전야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국회 본회의장은 ‘비극’이었다. ‘이게 정치냐’며 ‘돌’을 들고픈 국민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도 한국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내놓는다면 이것이 국민에게 통한다고 보는 것일까. 물론 30%대까지는 통할지도 모른다.

그 외는 어떻게 될까. ‘거대한 역풍’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비례당 창당 과정에서의 여러 논란이 총선 정국에서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국회의원 빼가기’를 통해 억지로 기호를 맞춘다든지 또는 구태 인물들을 비례당 간판으로 내세울 경우 차라리 안하느니 못한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한국당은 비호감이 상대적으로 높다. 게다가 비례당 창당은 민주정치의 바람직한 길도 아니다. 따라서 창당을 어떻게 하든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여러 논란이나 불협화음은 결국 한국당의 총선 전략을 송두리째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당이 비례의석에 집중해야 할 정당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례당의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한국당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적 혁신’과 ‘중도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공천을 앞둔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래야 외연이 확장될 것이며 그 연장선에서 비례당 창당 문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항하는 ‘불가피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례당의 인적 구성도 말 그대로 ‘문재인 정부의 대안’이 돼야 한다. 한국당 불출마 인사들이나 그 주변의 구태들이 진을 친다면 표가 아니라 돌을 맞을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쯤 되면 비례당 창당을 공식화 한 한국당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당 현실 감안시 아직은 낙관보다 비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무지한 셈법으로 비례당 창당을 ‘묘수’로 간주하는 것은 어설픈 단견에 다름 아니다. 특히 명분과 대의가 실종된 ‘꼼수’로는 그 무엇이든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꼼수로 조금은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시대정신까지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당의 비례당 창당, 말릴 수는 없으나 국민들의 정치 수준을 가볍게 보지 않기를 바란다. 20대 총선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의 한국당 참패, 비례당 창당이 그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