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또 당일인 25일에도 필리버스터를 강행하며 맞불전을 펼쳤다. 대부분의 의석을 비운 텅빈 본회의장 연단에서 ‘분노와 화염’의 거친 말을 쏟아 낸 시간이 무려 50시간 11분이었다. 여야 모두 15명이 연단에 섰다. 그렇게 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국민의 관심도, 또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도 아니었다. 허망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꼭 따지고 싶은 것이 있다. 필리버스터가 특정 안건의 처리를 막기 위한 소수정당의 합법적 수단이긴 하지만 거기에도 ‘격’이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필리버스터 자체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목적인데 거기에 무슨 알맹이나 격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목적이든 민의의 전당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국회의원의 발언이다. 즉 국회에서 행해지는 공적 발언이라는 뜻이다. 그 발언에 이렇다 할 내용이나 격이 없다면 이미 ‘대표 기능’을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가 행해지는 국회 본회의장 풍경은 초라하다 못해 이를 지켜보는 사람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 국회의장석 주변으로 몰려가 노골적으로 회의를 방해하는가 하면 집단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거친 말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심지어 국회의장을 향해 ‘문희상씨’ 운운하며 사퇴하라는 고성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오죽했으면 국회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막을 정도였다. ‘막장 정치’가 딱 이런 수준일 것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장을 향해 그것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실상 막말 수준의 비난을 쏟아낸다면 도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말문이 막힐 정도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26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국회의원이 그들의 대표인 국회의장을 국회운영과 관련해 불법을 저질렀다며 검찰이 수사해 달라는 것이다. 정치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국회의장의 의사진행 과정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여야 간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또 얼마든지 반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리버스터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 소수자의 외침이 막말과 고성 심지어 국회의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국회 안건 상정마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구할 정도라면 우리 정치는 이미 ‘재앙’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이 그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아프지만 우리 정치가 이미 법과 격을 따질 단계를 넘어 버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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