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의 아침평론] 한해를 보내며 되돌아보는 얼룩진 뒤안길
[정라곤의 아침평론] 한해를 보내며 되돌아보는 얼룩진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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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보니 생각나는 게 정말로 많다. 먼저 올해 새날 아침에 경건하게 빈 소원이 먼저 떠오른다. 본란에서 이태극 시조시인의 ‘올해는 복 많으라 뜻대로 살고지라/ 남북에 나뉜 형제 얼싸안고 일어서라…’ 영신부(迎新賦) 첫 구절을 인용하면서 국민 개인과 이웃, 국가․사회 모두가 강녕(康寧)을 누리는 것을 빌었던바, 한해가 지나는 세밑에서 되돌아보니 그 간절했던 소원은 깡그리 부도가 났다. 그 모든 원인이 국민운동장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의 마당에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들의 구태정치로 올 한해가 얼룩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정치가 국민을 무시한 탓이다. 오늘날 민주주의하에서 대의(代議)제도가 성행한 이후 선거에서 뽑힌 소위 선량(善良)들이 그 주인인 국민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최선을 다한 것인가를 묻는다면 단연코 노(NO)인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기득권에 맛들인 소수 정치인들이 정국을 좌지우지하면서 국민이익보다는 자신과 자기 정당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었던 2019년이라 단정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 머슴임을 자처해온 정치인 스스로 주인을 업신여기는 이율배반이 우리사회에서는 흔한 일이니 새삼 놀란 일은 아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에서도 비일비재했다. 우리에게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일찍이 정치인들에 대해 형편없이 평가했다. 그는 민주주의, 대의정치제도가 잘 발달된 영국에 대해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일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고 설파한 적이 있는바, 이 말은 선량들의 이중성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올해는 우리사회에서 못난 정치로 인해 나라안이 시끄러웠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진 마당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국민이익을 위해 나서줘야 하건만 정치권에서는 온통 내년 총선에 매달려 있다. 국민들이 유권자의 표심에 따른 좋은 선거제도를 마련해 선진정치를 실현해달라고 해도 자기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 안달하고 있으니 선거제도에서 기형물로 변질될 수 있는 ‘연동형 캡’이 나오고, 느닷없이 ‘비례한국당’ 창당설까지 쏟아지는 등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나오고 12월 임시국회에서도 갈등을 보이니 다른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는 연말이다.

정치권이 엉망진창이면 정부라도 정신 차려 각종 정책을 잘 계획하고 추진해야 하건만 정치논란에 휩싸여 납작 엎드려 눈치만 살핀다. 복지부동이 아니라 복지안동(伏地眼動)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의 반이 더 지났지만 제대로 된 게 없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초에 기대를 걸었던 남북관계 개선도 지금은 악화일로 상태다. 그러면 국민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교육정책이나 주택정책에서 잘 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국민들에게, 수요자들에게 부담만 주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교육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겠노라 나섰지만 개혁된 게 별로 없는데다가, 특히 조국 정국에서 불거진 특혜 대학입시 의혹 등 우리사회의 불공정성 문제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정책적 불신감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주택문제 등 부동산 대책은 수요자들을 더 피곤하게 만들며 가진 자들의 부(富) 증가 수단으로 역이용당하는 우스운 꼴이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문제는 해결하겠다’ 장담했던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18번이나 나왔지만 대책이 나올 때 그 때만 잠깐이지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有耶無耶)되고 만다. 오히려 ‘풍선효과’가 확산되면서 집 없는 사람들이 더 어려움에 처해지고 서울지역의 주택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했다. 지난 12월초에 분양된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청약에서 78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보였는바, 불과 1년 반 사이에 청약률이 무려 7배나 치솟은 과열 현상이 나타났으니 서민들은 고달프다.

아이들 장래와 직결되는 교육문제, 청·중년들의 최대 현안인 주택문제에 대한 정부정책이 종합적 처방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임시 처방하는 땜질식이다. 또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나 고용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삶이 퍅퍅한데, 우리사회에서는 정치적 혼란에다가 한반도 불안감마저 겹치고 있으니 한 마디로 내우외환이다.

비록 우리사회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민을 위해 정부가 선정을 펼치고 정치권이 희망을 준다면 그 난관은 쉽게 헤쳐 나갈 수 있겠지만 우리 앞에 닥쳐진 현실은 그게 아니다. 이념으로 갈라지고 빈부는 심화되며 난국을 극복할 지도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범을 보여야 할 고위층 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숫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세류였으니 정초에 가졌던 기대가 사라지고 갈등과 혼란만 부추긴 2019년이었으니 많은 국민들이 고달프고 힘든 한해였다. 얼룩진 세월의 뒤안길을 되돌아보는 마음조차 어두운 한해 끝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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