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효창공원 내 의열사 ⓒ천지일보 2019.12.23
효창공원 내 의열사 ⓒ천지일보 2019.12.23

6호선, 경의중앙선 효창공원역
문효세자, 의빈성씨 묘 있던 곳
일제, 골프장, 놀이공원 만들어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 안장
순국선열 영정 모신 '의열사'00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유난히 친근한 느낌이라고 할까. 푸르른 나무와 지저귀는 새들. 거기다 주민들이 편한 시간대에 자유로이 오가다 보니 삶의 일부인 듯 보인다.

서울 용산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효창공원’. 이곳을 오갈 때면 자유로이 운동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쉼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또 곳곳에 나무 벤츠가 놓여있어 연인이나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사계절 다양한 색으로 물들기도 한다.

그런데 효창공원이 특별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냥 효창공원 이름만 들으면 효창동에 있어서 이름이 지어졌나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 어느 공원보다도 더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었다.

◆일제에 파괴되는 효창원

효창공원은 원래 ‘효창원(孝昌園)’이라고 불렸다. 이곳은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무덤이 있었는데, 서삼릉(西三陵)으로 강제 이장 당하고 이름이 효창공원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에도 왕가의 묘를 몇 기 더 모셨고 1870년(고종 7)에 비로소 효창원으로 승격된 것이었다. 본래 효창원은 청파동과 효창동 일대의 수림이 울창한 지역에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불법 주둔으로 이곳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1921년 이곳에 경성 최초의 골프장이 개설해 운영됐다. 1924년 경성부가 효창원 일부를 공원으로 조성해 순환도로, 공중변소까지 갖추면서 8월 일반에 공개했다. 1930년대에는 놀이시설이 들어섰다. 일제 말기 묘들을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곳곳에는 벚꽃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외래 식물들이 심어졌다.

의열사 안에 마련된 김구 선생의 영정 ⓒ천지일보 2019.12.23
의열사 안에 마련된 김구 선생의 영정 ⓒ천지일보 2019.12.23

◆역사적 장소로 탈바꿈

이렇게 일제의 수난을 받던 효창공원이 역사적인 장소로 바뀌게 된 것은 독립운동가의 묘소가 들어서면서부터다. 효창공원에는 삼의사 묘역과 임정요원 묘역이 있다.

삼의사 묘역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삼의사는 1946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이곳에 봉환 안장됐다. 삼의사 묘 왼편에는 안중근 의사 가묘가 하나 있다.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해 비워둔 것이다.

삼의사 묘역 앞에는 1990년 순국선열 7위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가 있다. 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리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7인의 영정과 위패를 이곳에 모셨다.

7위선열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 13일 합동 추모 제전을 지낸 이래 계속되고 있다. 또 역사의 생생함을 느끼고 애국 애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6년 5월부터 상시로 개방하고 있다.

또한 효창공원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묘소도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생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이 말. 평화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더욱 회자되고 있는 말인 듯하다.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효창공원.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도 배움을 배워가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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