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교수의 이웃나라 이야기_뉴질랜드 (25)] 뉴질랜드, 문화의 공존과 다양성의 원천은 금광 발견에 있었다
[박춘태 교수의 이웃나라 이야기_뉴질랜드 (25)] 뉴질랜드, 문화의 공존과 다양성의 원천은 금광 발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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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금속의 제왕 ‘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귀금속의 제왕 ‘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귀금속의 제왕 ‘금’

금속은 인류 역사상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 가운데 ‘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귀금속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의 뛰어난 물성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환금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금속의 상업적 가치를 보자. 금속 중에서 가격이 가장 싼 것으로는 철을 꼽을 수 있다. 1톤에 1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귀금속 용도인 은의 가격은 1㎏에 70만원 정도이다. 그렇다면 장식용으로 쓰이는 금의 가격은 얼마일까.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시세가 1g에 무려 5만 900원 정도 하는데, 이는 1㎏에 5000만원 정도라는 가격을 추측케 한다. 이렇듯 높은 가치와 뛰어난 물성 때문에 인류는 금에 대한 관심도와 소유도가 지속적으로 증폭돼 왔다.

이는 끊임없이 금을 채광하도록 하는 동인이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분량은 어느 정도일까. 17만 1300톤으로 추산되는데, 이를 부피로 환산하면 2500㎥의 수영 경기장 3.5개 정도이다.
 

뉴질랜드 남섬 남동부에 오타고(Otago)라는 지역이 있다. 19세기에 명실상부한 금광 개발의 1번지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뉴질랜드 남섬 남동부에 오타고(Otago)라는 지역이 있다. 19세기에 명실상부한 금광 개발의 1번지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금광 개발의 1번지 오타고

뉴질랜드 남섬 남동부에 오타고(Otago)라는 지역이 있다. 19세기에 명실상부한 금광 개발의 1번지였다. 개발 이전에는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고래잡이를 하면서 생활 터전을 마련한 곳이다.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겼던 지역이다.

그러던 이 지역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1861년에 들어서면서 금을 발견한 것을 기점으로 골드러시를 이룬다. 금의 채광이 이뤄지기 13년 전인, 1848년에는 최초로 유럽인의 이주가 있었다.

이주자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오타고 지역에 이주하자마자 미개척지였던 이 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1861년부터 뉴질랜드 전역은 물론, 유럽, 미국, 중국 등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오타고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지역은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했다.

여러 군데에서 거대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골드러시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줄을 잇는 광풍이 벌어질 정도로 금광 개발은 지역 도시와 마을을 경제적으로 급부상시켰다.

대표적으로 더니든(Dunedin), 애로우타운(Arrowtown), 크롬웰(Cromwell)을 들 수 있다. 특히 더니든이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이자 지역의 대도시로 급부상했다. 금이 넘쳐나면서 지역 사람들과 지역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황금 경기였다. 이에 힘입어 우아한 건축물들도 많이 지어졌다.

 

1861년부터 뉴질랜드 전역은 물론, 유럽, 미국, 중국 등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오타고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1861년부터 뉴질랜드 전역은 물론, 유럽, 미국, 중국 등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오타고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오타고로 온 중국인들

애로우타운 형성 과정을 보자. 퀸스타운(Queenstown) 근처에 있는 마을로 1862년에 형성되었는데, 애로우 강에서 금이 채광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해 오타고 지방 정부는 중국인을 초청하기로 한다. 이는 금광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약 8000명의 중국인이 오타고로 왔다.

이때 초청받은 중국인들은 대부분 미국 캘리포니아의 금광 지역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중국 광둥성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중국인을 초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에 유럽에서 금을 캐러 온 사람들이 오타고 지역에서 금을 채광하는 것을 대단히 힘들어 했다. 게다가 채광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금을 선별해서 처리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타고 지역으로 이주해 왔던 유럽인들은 다른 지역인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인이 오타고 지역으로 초청받아 오게 된 것은 유럽인들이 포기한 채광 일을 대체하는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노다지의 꿈을 안고 오타고 지역에 도착한 중국인들은 아연실색했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지형에는 거주할 집도, 생활할 수 있는 시설도 거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들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거주할 집을 짓는 일이었다. 여러 날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지만 강가의 외진 곳이나 산등성이밖에 없었다. 거기에 흙이나 돌로 만든 작은 움막집을 지었다. 이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동굴 안에 양철판을 조립하여 추위, 비바람이라도 간신히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하였다.

오타고 지방 정부에서 초청은 했지만 보살펴 주지는 않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금광 마을 입구에 세워진 간판이 눈길을 끈다. ‘초청받았으나 환영받지 못했다(Invited but unwelcome)’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분량은 어느 정도일까. 17만 1300톤으로 추산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분량은 어느 정도일까. 17만 1300톤으로 추산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금광 광부들에 의해 세워진 크롬웰 마을

마운틴 쿡(Mountain Cook)을 지나 퀸스타운(Queens Town)으로 가는 길목에 눈길을 끄는 지역이 있다. ‘크롬웰’마을로 금광 광부들에 의해 세워진 마을이다. 골드러시로 많은 이주자들이 몰려들었는데, 특히 중국인들이 많아 차이나타운으로 불릴 정도다.

1860년대 당시에는 뉴질랜드의 이민 유입자 수에 제한이 없었다. 따라서 세계 각지에서 뉴질랜드로 입국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저에는 세계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가난과 기근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입자의 비율이 가장 많은 나라와 지역으로는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였다. 하지만 그들은 입고 온 옷 이외에는 아무런 의복도, 음식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타고 지역으로 왔다. 한마디로 오타고 지역의 의식주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갖지 않았다.

심지어 오타고 지역의 혹독한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 또 추위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의식주가 태부족했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한겨울인데도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사상자가 많이 생겨났다. 매서운 추위로 인한 동사, 기근으로 인해 1863년 한해만 해도 약 500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초겨울에는 강물의 범람이 심각했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원인은 광부들이 강둑을 따라 텐트를 쳐 놓고 거기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특히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는 나무가 없고 목초지만 있었다. 그래서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연료가 없거나 많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금을 캤던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센트럴 오타고에 정착민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작은 규모의 마을들은 점점 큰 마을로 변해갔다. 하지만 금이 고갈되기라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로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더니든이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로 부상하자 정부에서는 남섬과 북섬의 균형 있는 발전을 심도 있게 고려하게 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더니든이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로 부상하자 정부에서는 남섬과 북섬의 균형 있는 발전을 심도 있게 고려하게 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12.20

이주민들의 독특한 문화 형성

1866년까지 금의 채광이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갈수록 강 유역에서 금을 채굴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숙련된 광부들은 강바닥이 금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빠른 유속으로 인해 강바닥에 있는 금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준설선까지 사용해 봤지만 강바닥까지 도달할 수는 없었다.

1867년까지 오타고 지역에서 채광된 금은 약 2백만 온스에 달했다. 지역민들은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뉴질랜드 경제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더니든이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로 부상하자 정부에서는 남섬과 북섬의 균형 있는 발전을 심도 있게 고려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65년에 오클랜드에서 웰링턴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는 오클랜드와 남섬의 지리적 상황을 고려해서 중간 지점으로 옮겼다고 볼 수 있다.

뉴질랜드는 문화의 공존,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존중한다. 그 비결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오타고 지역의 금광 개발이 원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스코틀랜드, 유럽, 중국 등 세계 각지로부터 이주의 광풍을 몰고 옴으로써 이주민들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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