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만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충격적인 사건들로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었다. 본지는 연말을 맞아 ‘유치원 개학연기 사태’부터 ‘화성연쇄살인범’, 국민을 둘로 나눈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올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10대 이슈를 키워드로 재조명해봤다.

[천지일보 =신창원 기자] 경기도 파주의 한 양돈농장에서 국내 첫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을 받은지 닷세째인 지난 9월 21일 오전 해당 농장 입구에서 방역관계자들이 출입차량과 인원에 대한 철저한 방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 =신창원 기자] 경기도 파주의 한 양돈농장에서 국내 첫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을 받은지 닷세째인 지난 9월 21일 오전 해당 농장 입구에서 방역관계자들이 출입차량과 인원에 대한 철저한 방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DB

48시간 동안 ‘이동중지’ 명령

살처분 돼지수 43만마리 넘어

“수급불안현상에 고기값 폭등”

보상기준 두고 갈등상황 여전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축산업계가 원래 어려웠는데 이번 일로 인해 더 힘들어졌어요.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거죠. 정말 답답한 현실입니다….”

올해 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농민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 이어 다시 한번 방역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ASF 확진 돼지가 발견된 지난 9월 17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오전 6시 30분부터 48시간 동안 전국의 돼지농장을 포함해 도축장, 사료공장, 출입 차량 등을 대상으로 ‘일시 이동 중지 명령’을 내렸다. 가까운 이웃나라 중국의 피해상황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농민들은 한반도 역시 돼지열병의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집돼지와 멧돼지 등 돼지과에 속하는 동물에게만 감염되는 전염병으로 본래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발병돼 그 이름이 지어졌다. 감염된 집돼지나 멧돼지의 분비물(눈물, 침, 분뇨 등)을 통해서 전파되며 잠복기는 약 4~20일 정도로 유지된다. 이 병에 걸린 돼지는 40도 이상의 고열증세, 식욕부진, 기립불능, 소화불량, 구토, 출혈 등을 보이다가 폐사하며 암돼지의 경우 유산 또는 사산을 할 수도 있다.

◆여행객 휴대한 피자서 최초 발견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4월 26일 중국에서 군산항으로 입국한 여행객이 휴대한 피자 돼지고기 토핑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 유전자가 처음 확인됐다. 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검출된 피자는 4월 9일 중국 산둥성을 출발해 군산항으로 입국한 중국인 여행객이 가져온 것으로 바이러스가 검출된 모든 축산물은 전량 폐기됐다.

당시 농식품부는 우리나라로 입국하는 선박과 항공기 내부 안내방송을 통해 축산물 휴대 반입 금지와 입국 시 자진신고할 것을 독려했다. 또한 해외에서 돼지고기나 돼지고기가 포함된 제품 등을 절대 반입하지 않도록 일반 여행객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9월 파주 소재 농장서 첫 확진

올해 9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소재 양돈농장에서 폐사한 어미돼지 5마리를 조사한 결과 국내에선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 양성이 최종 확진됐다. 정부는 비상사태임을 인지하고 48시간 동안 전국 돼지농장 등에 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농식품부는 해당 농장에 대한 긴급 방역조치를 실시했고,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초동방역팀 6명을 투입해 신고농장의 농장주, 가축, 외부인, 차량 등의 출입을 통제했다. 거점소독시설과 통제초소도 운영해 축산차량에 대한 소독조치도 강화했다.

돼지열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정부는 6월 5일 세종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특별관리지역을 기존 10곳에서 14곳으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10개 시·군의 주요 도로에 통제초소와 거점 소독시설 설치·운영 ▲접경지역 내 모든 양돈농가에 대해 일제소독과 생석회 도포 실시 ▲야생멧돼지 차단용 울타리 시설과 포획틀 설치 ▲양돈농가 잔반 급여 중지 및 배합사료로 대체 ▲야생멧돼지와 접촉하지 않도록 접경 지역 돼지 방목사육을 자제 등을 지시했다.

특히 파주시는 생석회로 뿌려진 길을 지나고, 총 2차에 걸친 소독약을 도포해야만 양돈농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통제했다.

또 정부는 농식품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ASF 대응 관계 부처 협의체’를 통해 ▲국경검역 ▲불법 축산물 단속 ▲남은 음식물 돼지 먹이 사용 관리 ▲야생 멧돼지 관리 등 4개 분야별로 부처 간 협력체계를 강화했다. 아울러 전국 6300여개 양돈농가를 일제히 점검·소독하고 전국 46개 거점소독시설도 전부 가동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천지일보 2019.12.6 DB
아프리카돼지열병. ⓒ천지일보 2019.12.6 DB

◆파주·연천 등 모든 돼지 살처분

돼지열병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자, 정부는 파주·연천 등 확진된 지역 중심으로 돼지를 전부 살처분하기로 했다. 지난달 8일 농식품부 등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금까지 국내 농장에서 경기도 파주 5건, 연천 2건, 김포 2건, 강화 5건 등 총 14차례나 발생했다.

지난달 6일 오후 10시를 기준으로 살처분 대상에 올랐거나 수매 도축된 돼지는 모두 43만 4895마리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10∼2011년 구제역 사태 때 살처분된 돼지 수인 353만 5793마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2002년 16만 155마리나 2014∼2015년 17만 4807마리 등 구제역이 발생한 다른 해보다는 훨씬 많은 수다.

앞서 농식품부는 경기 김포시와 파주시, 연천군 내 ASF 발생 농장으로부터 3㎞ 이내 지역과 인천 강화군 전 지역 내 총 94개 농장에서 15만 4548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5~6일 간격으로 접경지역 농장에서 계속해서 확인되자 방역 당국은 파주와 김포와 연천, 강원 철원·고성군(남방한계선 10㎞ 이내)에서도 수매 후 남은 돼지를 모두 살처분했다. 이 지역에는 총 181개 농장에서 28만 8877마리의 돼지를 사육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돼지에서는 9월 마지막 확진 농가에서 발생 된 이후 두 달여간 추가 발병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야생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지속해서 검출되고 있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경기 연천군과 파주시, 강원 철원군 등 지역에서 감염된 멧돼지가 발견된 것은 이달 18일 기준 총 47건이다.

◆돼지고기 가격 줄줄이 뛰기도

돼지열병 발병으로 돼지고기 경매량이 줄고 돼지고기 유통 물량이 크게 감소하자 일선 정육점에서 파는 돼지고기 가격이 줄줄이 뛰기도 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돼지열병 발병 직후 전국 돼지 도매시장에서 경매된 돼지 도축 두수는 7346두로, 추석 전인 기간의 1만 5554두에 비해 52%나 급감했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돼지열병 추가 확산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기 전까지는 수급 불안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ASF로 돼지고기 소비가 위축되자 이를 막기 위한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ASF 발병 뒤 소비가 위축돼 돼지고기 가격이 하락하는 등 이중고를 겪는 양돈 농가를 돕기 위해 돼지고기 소비촉진 행사를 지난달 8일 열었다.

경기도는 31개 시·군과 함께 돼지고기의 안전성, 우수성을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홍보하고 시·군 주민센터에서 돼지고기 요리법을 교육하는 등 소비 확대도 유도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동안 인천 강화·경기 김포 지역의 양돈농장을 중심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됨에 따라 돼지고기 도·소매가격이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 정육코너 모습. ⓒ천지일보 2019.10.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한동안 인천 강화·경기 김포 지역의 양돈농장을 중심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됨에 따라 돼지고기 도·소매가격이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 정육코너 모습. ⓒ천지일보 2019.10.25

◆농가 vs 정부, 합의점 못찾아

돼지들을 모두 살처분한 인천 강화·경기 김포 양돈농장주들과 정부는 보상기준을 두고 여전히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양돈농가들은 생계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방역대책 강화로 살처분 범위가 넓어지면서 막심한 피해를 봤고 그 만큼 영업손실도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정부는 농가당 수억원대의 보상금을 이미 지급했고, 생계비 지원 기간을 연장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모두 했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달 17일 농식품부는 ASF 방역 과정에서 살처분이나 이동 제한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와 지자체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 지원을 확대하는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살처분 후 입식(돼지 사육)이 제한된 농가는 다시 소득이 생길 때까지 생계 안정을 위해 생계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 지원 기간은 6개월이 최대였으나, 입식이 늦어지는 경우에 대비해 6개월이 지나도 생계비를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또 살처분 보상금에 대한 국비 지원 근거도 마련됐다.

농식품부 방역정책과 관계자에 따르면 ASF가 처음 발생한 9월 16일로 소급을 적용해 원래는 내년 3월 16일까지가 생계비 지원기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정비로 입식이 늦어지면 지원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하지만 여전히 양돈농가에서는 생계비 지원 규모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농식품부가 마련한 생계비 지원 한도는 통계청의 전국 축산농가 평균 가계비를 기준으로 한달에 337만원이다. 이를 통해 생활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농가들의 주장이다. 337만원은 최대 한도일 뿐 실제 받는 금액은 크게 미달하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살처분 마릿수를 구간으로 정해 생계비 지원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살처분 마릿수가 801~1200마리일 때는 상한액을 준다. ▲601~800마리, 1201~1400마리는 상한액 80% ▲401~600마리, 1401~1600마리는 상한액 60% ▲201~400마리, 1601~1700마리는 상한액 40% ▲200마리 이하, 1701마리 이상은 상한액 20%를 적용해 생계비 지원 한도를 설정한다.

양돈농가들에 따르면 대다수 피해농가들은 2000마리 이상을 살처분한 상태라 가장 낮은 수준인 한달에 67만원 가량만 받게 된 상황이다. 이 수준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양돈농가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생계비 지원 기준은 다른 가축 전염병과 동일해 쉽게 상향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선을 긋고 있다. 또한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한 만큼 생계에 지장을 줄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농가와 정부,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채 평행선을 그리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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