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달 속 토끼. 반시계방향 90도로 돌리면 토끼가 절구를 찧는 모습으로 보인다.

불 속에 뛰어들며 소신공양… 달에 보내지면서 구전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이젠 보름달을 바라보며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의 항공우주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내딛자 더 이상 보름달 속 토끼는 신비로움의 대상이 되긴 어려워졌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보름달 속 토끼가 살아있다. 올해 신묘년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날을 맞아 보름달 속 토끼가 어떻게 떡방아를 찧게 됐는지 그 유래를 재조명해 본다. 

◆ 불사약 대신 한국선 떡방아 찧는 토끼… 불사·보시·희생 상징

토끼는 작은 몸집에 비해 큰 눈과 큰 귀를 가지고 있어 위험한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는 영특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또 토끼는 십이지 중 네 번째에 해당하며 방위는 90° 동쪽에 배속돼 있고 시간은 오전 5~7시다.

특히 토끼 묘(卯)자는 토끼의 두 귀를 형상화했는데 이는 마치 땅 속에서 올라오는 새싹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즉 ‘흙을 뚫고 소생하는 기운을 가졌다’는 의미로 음력 2월을 상징하기에 우리 조상들은 토끼를 풍요의 상징 및 농사의 시작으로 여겼다.

이런 토끼가 보름달만 뜨면 떡방아를 찧었던 게 옛날 구전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됐을까.

달 속에 있는 토끼의 유래는 고대 인도설화로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진다. 이 설화가 불경에 흡수되면서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됐다. 대표적인 한 예로 <대당서역기>에 담겨있는 토끼의 보시 내용이다.

어느 날 노인으로 변장한 제석천(불교 수호신)이 토끼·여우·원숭이 앞에 섰다. 그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부탁했는데 여우는 강 속에서 싱싱한 잉어 한 마리를, 원숭이는 진귀한 꽃과 열매를 가져왔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토끼는 장작에 불을 붙여 자신을 ‘한 끼 식사로 대접한다’며 불 속에 뛰어 들었다. 제석천은 자신을 위해 소신공양한 토끼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불에 탄 토끼를 재에서 꺼내 여우와 원숭이에게 토끼를 달에 보내어 영원히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모두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전해졌으며 토끼를 ‘불사(不死)·보시·희생’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 서왕모 불사약 먹고 달로 도망간 항아

또 인도 불교 토끼이야기는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고대 중국 전설로 이어졌다. 서왕모(선녀)의 불사약을 훔쳐 먹은 항아(선녀)가 달로 도망간 후 두꺼비로 변하게 됐다는 설이다.

이 달에는 베어도 죽지 않는 계수나무와 약방아를 찧는 토끼가 나오는데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이야기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 ‘토끼와 거북이’ 원래 ‘원숭이와 악어’

이 밖에 유명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불교 설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원래 토끼와 거북이는 원숭이와 악어였다는 것이다. 불교가 중국을 거치면서 악어가 거북이로 변했고, 원숭이는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꾀 많은 토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 장수를 상징하는 토끼·두꺼비·계수나무

우리나라의 유물 중에는 토끼가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연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예로 고구려 고분벽화, 통일신라시대 수막새, 고려 수월관음도, 고려시대 청자투각칠보향로 등이 있다.

또 불교 사찰에서는 토끼와 거북이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인도불교 설화가 바탕이 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섬토문 수막새’를 보면 동그란 수막새를 달에 빗대어 토끼·두꺼비·계수나무를 한 자리에 표현했다. 여기서 토끼·두꺼비·계수나무는 모두 장수를 상징하며 이는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사상과 맞아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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