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거리에 나서면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들이 온통 노랗게 물들인 잎들을 떨궈내곤 했다. 바람이 조금 불적마다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꽤나 멋진 장면들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파리들이 떨어져 나간 앙상한 가지를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울긋불긋 단풍을 보러 행락객들이 전국 명산을 찾았다는 보도를 들었는데, 어느 사이 찬바람 부는 12월 중순이 됐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해외여행이야 시간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전 계획을 해야 다녀올 수 있겠지만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로 다녀오는 국내여행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가 있다. 계절이 바뀌는 데에도 여행 한번 하지 않고 일상의 단조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지만 젊었을 때 열심히 살고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 부부끼리 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지난달 말경, 서울에 살고 있는 고향친구 모임에서 더 춥기 전에 강원도 바닷가에 놀러간다는 소식을 전해오더니만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카카오톡 그룹채팅 란에 참 많이도 올려놨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친구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하기야 대기 오염이 심하고 세상살이 온통 시끄러운 일만 일어나는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잠시나마 그 속에서 벗어난다는 자체가 얼마나 좋으랴 싶다. 비록 1박 2일 짧은 여행이더라도 어릴 때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고향친구들과 강원도 양양 땅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바다 풍경을 보면서, 또 덤으로 맛있는 회까지 곁들어 좋은 추억까지 만들었으니 충분히 행복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비단 고향친구들과 함께 가는 게 아니더라도 여행은 기분이 좋고, 얻어지는 게 많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또 취미가 같은 지인들, 끼리끼리 여행하는 목적은 대개가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활력소로 찾기 위함이 아닌가. 필자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은퇴 후 1년에 한두 번씩 가겠다’고 계획한 중국여행이 벌써 20여회가 됐으니 여행을 다닐 때마다 재미가 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유럽과 미주, 호주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다녀오면서도 중국엔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중국 자유여행이 마냥 즐겁다. 중국에는 역사면 역사, 자연명승지면 명승지에서 볼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뿐더러 한국과는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아 다녀와도 컨디션 조절에 불편함이 없는 게 장점이다. 그렇게 시작한 중국여행이 벌써 10년이 더 지났어도 날이 갈수록 변하고 새로운 볼거리가 많은 게 중국여행이다.

그런 관계로 해서 최근에는 중국 윈난(雲南)성에 있는 리장(丽江)이란 곳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지난해에 아내와 함께 다녀온 뒤에 너무 좋아서 고향친구와 한 번, 친척들과 한 번씩 올해 두 번이나 갔는데 볼수록 가슴에 담겨지는 게 많은 생각나는 도시다. 해발 240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128만 남짓한 리장은 배낭여행자들에는 ‘꿈의 도시’라 불린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리장고성과 만년설에 덮이어 1년 내내 녹지 않는 옥룡설산(玉龙雪山)이나, 그 아래에서 신비로움을 자랑하는 람월곡(濫月谷), 백수하(白水河) 등은 리장의 상징인바,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많아서 중국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 1위로 뽑은 도시답게 아름다운 곳이다. 거리에 난점이나 포장마차 등이 없어 깨끗하고, 시내에도 화단이나 가로수뿐만 아니라 가로등이 잘 정비된 것도 이 관광도시의 특징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나날이 달라지는 중국 역사·관광지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중국관(觀)이 바뀌어졌다고나 할까. 필자는 여행을 통해 생명력으로 톡톡 튀는 변화를 알고 작은 희열을 느낀다. 그렇고 보면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설파했던 독일의 대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말이 떠오른다.

바그너는 학창시절 학과 성적은 물론 피아노 실력, 음악에 이르기까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평소 시를 좋아하고 사물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작곡가로 출발했으나 인정을 받지 못했고, 38세 나이에 사회혁명에 참여해 실패하고 9년간 스위스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작곡가, 음악평론가로 활약하던 그 당시 스위스 각지로 여행 다니면서 고난의 시간을 잘 견뎌낸 그는 여행에서 얻은 영감 등이 후일 대음악가로 변화시킨 원동이 됐다.

여행을 통해 얻는 성과물은 많다. 유형의 체험에서부터 감동에 이르는 무형까지 이루다 말할 수가 없다. 바그너가 여행을 통해 삶의 변화, 살아있는 생명력의 음악을 희구했듯 시간의 틈을 내어 여행을 즐겨보시라. 대음악가가 설파했던 ‘기쁨은 사물 안에 있지 않고,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는 말처럼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얻는 기쁨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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