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반란군 이각, 곽사는 이몽과 왕망이 패해 죽고 나자 모사 가후의 말에 따라 성문을 굳게 지키고 응전하지 않았다. 두 달이 채 못 되자 서량병은 군량미가 떨어졌다. 그들은 전에 내응한 적이 있는 성안의 마우와 충소, 유범에게 양식 걱정을 했다. 공교롭게도 마우의 상노가 서량병과 내통 사실을 밀고해 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마등, 한수는 군량미가 떨어졌고 내응까지 탄로가 됐으니 더 배겨 내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진을 걷어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후가 계책을 내었다. “이제 한 번 싸워 볼 때가 됐소. 달아나는 서량병을 시살할 기회요.”

이각, 곽사는 가후의 말을 쫓았다. 장제에게 일지 군마를 주어 마등을 쫓게 하고 번조한테는 한수를 쫓게 해 일지 군마를 주었다. 마초가 죽을힘을 다해 장제를 막았으나, 한수는 번조의 군사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일진이 대패했다. 번조는 달아나는 한수를 끝까지 쫓았다. 한수는 더 이상 달아날 수가 없었다.

한수와 번조는 본시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한수는 달아나던 말머리를 돌려 번조에게 애걸을 했다.

“번 장군, 당신과 나는 같은 동향 사람인데 오늘 너무 무정하구려.”

번조는 말을 멈추고 대답했다. “아무리 고향 사람이지만 위의 명령이니 어쩔 수가 없소.” “내가 군사를 일으켜 여기까지 온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온 것이니 너무 핍박하지 마시오. 다음 날 천하 일이 어떻게 바뀔지 당신이 아시오?”

그 말에 번조는 마음이 흔들렸다. 한수를 놓아 주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한수는 그 틈을 타서 마등 부자의 뒤를 쫓아 서량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됐다.

번조의 진에는 이각의 조카 이별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이각에게 보고를 했다. “번조란 자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병주 자사 한수를 잡았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이각은 크게 노했다. “무어라! 번조가 한수를 일부러 놓아 주었단 말이냐? 군사를 일으켜 번조부터 토벌해야겠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모사 가후가 말렸다. “지금 인심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함부로 칼을 써 자중지란을 일으킨다면 내부의 동요가 클 것이니 전승을 축하하는 연회를 빙자해 번조를 청한 뒤에 그곳에서 번조를 잡는다면 힘들이지 않고 처치할 수 있습니다.”

이각은 가후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잔치를 열고 장제와 번조를 청했다. 두 장수는 거리낌 없이 연회에 참석했다. 술이 반쯤 취했을 때 이각은 얼굴빛이 변해 큰 소리로 번조를 꾸짖었다.

“번조야, 이놈! 너는 어찌해 적장 한수와 밀통을 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느냐?”

번조는 대번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손이 떨리고 입이 굳었다. 채 대답을 하기 전에 벌써 창과 칼을 든 도부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번조의 목을 선뜻 베었다. 번조의 목이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꼴을 본 장제는 죄가 없으면서 무서워 벌벌 떨면서 땅에 엎드려 대죄를 청했다. 이각은 장제를 붙들어 일으켰다. “번조는 한수와 내통했으므로 군법으로 처단했지만 장 장군은 나의 심복이니 놀라지 말고 앉으시오. 이제 장군에게는 번조가 거느렸던 군마를 관령케 하니 그리 알고 충성을 다하시오.”

장제는 백배 사례를 하면서 본부 군마와 번조가 영솔했던 군사를 거느리고 홍농으로 돌아갔다.

동탁의 잔당 이각, 곽사가 서량병을 대파한 뒤 제후들은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모사 가후는 이각과 곽사한테 백성을 평안케 하고 어진 사람과 호걸들을 등용해 쓰라고 자주 건의를 했다. 그 까닭에 조정은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밖에 청주에서 또 다시 황건적이 일어났다. 수효가 수십만이었다. 양민을 약탈하고 괴롭혔다. 이각, 곽사는 백관들을 모아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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