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로 보는 인류史(11)] 우리나라 화폐사, 근대주화(1882~1910)
[화폐로 보는 인류史(11)] 우리나라 화폐사, 근대주화(1882~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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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제철 풍산 화동양행 대표

독수리 반원 은화(제공: 풍산 화동양행)
독수리 반원 은화 (제공: 풍산 화동양행)

독수리 도안 화폐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강압에 의한 간섭을 시작했고, 러시아와 친밀한 인사들은 러시아와 사전에 모의하여 아관파천을 실행에 옮겼다. 혼란한 사회와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왕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러시아 공사관으로 왕을 피신시킨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조선의 경제·정치·사회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인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인천전환국을 폐쇄하고 용산에 용산전환국을 설치해 1901년 러시아의 국장인 독수리를 도안으로 한 반원 은화, 5전 백동화, 1전 청동화 등 3종을 발행했다. 이는 당시 힘이 없던 우리나라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일본과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주화들을 발행하는 약소국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독수리 1전 청동화
독수리 1전 청동화

독수리 무늬 주화는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후 조선에서 일본세력이 판을 치게되자 불안해진 러시아가 한국 화폐제도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 내에 한러은행(韓露銀行)을 설치하고 즉시 발행한 러시아식 근대주화다. 그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 잔존수량이 거의 없어 3종의 통용화 모두 희귀주화에 속한다.

20원 금화(제공: 풍산 화동양행)
20원 금화 (제공: 풍산 화동양행)

금본위 제도의 신식화폐

1891년 은본위 화폐정책을 받아들인 후 10년 만인 1901년 화폐 조례가 제정돼 20원, 10원, 5원 금화 3종류를 본위화폐로 정하고 보조화폐로는 반원 은화, 20전 은화, 5전 백동화, 1전 청동화가 발행됐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일협정서를 체결하고 화폐정책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10전 은화와 반전 청동화가 제조·발행됐고, 우리나라는 사실상 화폐제조권을 박탈당했다. 이들 주화는 전량 일본의 오사카 조폐창에서 제조돼 한국에 유통됐다.

10원 금화(제공: 풍산 화동양행)
10원 금화 (제공: 풍산 화동양행)

우리나라 최초의 금화(20원, 10원, 5원)

일본 오사카 조폐창에서 20원 9만 2500매, 10원 5000매, 5원 1만 매가 발행됐으나 통용되지 못하고 다시 회수돼 거의 용해되어 버린 우리나라 최초의 금화들이다. 이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주화로 손꼽히며 화폐수집가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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