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한미연합사령부가 연례적으로 행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합동군사훈련에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훈련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부터 내달 중순까지 이어지는 이번 훈련은 그간 진행했던 훈련 내용과 달리 변화된 한반도 정세를 반영해 기본 내용과 과정에서 일정부분 수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개념계획 5029 → ‘작전계획’ 수준으로 구체화

군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이번 훈련에 맞춰 북한 급변사태 대응 계획인 ‘개념계획(CONPLAN) 5029’를 작전계획으로 발전시켜 운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념계획’은 다소 추상적이고 테두리만 아우르는 계획인 데 반해 ‘작전계획’은 구체적인 부대배치, 병력동원 등이 포함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념계획 5029는 지난 1996~97년 당시 북한 붕괴 조짐이 나타나면서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제의해 게리 럭 전 사령관 시절인 1999년 수립됐다. 이 개념계획은 크게 여섯 가지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는데 ▲쿠데타와 같은 북한 내전(內戰) 상황 ▲대량 탈북 난민 사태 ▲핵・생화학무기・미사일 등 북한 대량살상무기 탈취 위협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작전 ▲북한 내 한국인 피랍 사태 ▲북한의 정권 교체 등이다.

이 개념계획과 관련해 한미연합사는 2004년 미국 정부의 승인에 힘입어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5년 당시 참여정부가 주권제약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미군이 작전계획에 따라 북한 지역을 관할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류가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9년 4월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의장과 함께 북한의 급변사태에 관한 계획을 발전시켜왔다”고 밝히며 현 정부 들어 ‘작전계획 5029’가 사실상 완성됐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물밑에서 의논돼 왔던 개념계획 5029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참여정부 당시엔 “북한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발생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앞섰다. 여기에 북한의 식량난, 김정일 건강 악화, 북한 내부의 불만 고조, 불안정한 김정은 세습 구도, 백두산 화산 활동 징후 등이 겹치면서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작계 5029, 약인가? 독인가?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수준으로 구체화하는 움직임을 놓고 현재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단 개념계획 5029는 북한과의 전면전이 아닌 ‘북한 내 급변사태’에 따른 한미 양국의 개입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기존 작전계획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북측의 선제공격이 없어도 북한 내부에서 심각한 동요가 발생하면 한미 연합군이 북으로 진격, 사실상 북한을 점령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4조에 배치되는 행위로, 평화통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탄을 받는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특히 북측과의 대화 단절을 염려하고 있다. 대화가 끊어지면 북측의 도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을 생각할 때 개념계획 5029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중국이 개입을 하게 될 것이고, 이때 미군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즉, 한국군만으로 거대한 중국군의 압력을 견뎌내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적절히 미군을 이용해 주체적인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견해다.

한편 북측은 매년 키 리졸브 훈련을 ‘핵전쟁 연습’이라며 비난을 해왔다. 따라서 이번 훈련기간에 북한이 무력시위를 벌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개념계획 5029에 따른 훈련 자체에 반감을 품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남북 긴장 수위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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