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행복한 나라 핀란드의 최연소 여성 총리
[정치평론] 행복한 나라 핀란드의 최연소 여성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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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매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간한다. 지난 3월 20일에도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2019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민소득 같은 경제지표뿐만 아니라 기대수명이나 자유, 관용 그리고 부패 문제 등 종합적 기준으로 각 국의 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꽤 참고할만한 자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였다. 지난해에 이어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물론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모두 상위에 올랐다. 복지국가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인 셈이다.

핀란드의 국토는 한반도의 1.5배지만 인구는 554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오랜 세월 러시아 식민지 시대를 보냈으며, 100여년 전 독립 후에는 좌우 이념대립으로 심각한 사회갈등과 내전을 겼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농업과 어업에 기댄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우뚝 섰다. 도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핀란드와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비결을 물을 경우 그 중심에는 역시 ‘정치’가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민의 화합과 공동체 정신 그리고 높은 민주주의 의식과 복지국가의 힘은 역시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핀란드 정치의 핵심도 화합과 공정 그리고 참여에 있다. 특히 비례대표제를 통한 다당제 구축은 핀란드 정치발전의 요체가 됐다. 정당관계가 경쟁체제로 구축되면서 판을 깨거나 억지를 부리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정책경쟁과 연립정부는 그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최근 핀란드로부터 세계적인 정치 뉴스가 전해졌다. 집권 사민당(SDP) 소속의 교통부 장관인 산나 마린(Sanna Marin)이 총리에 선출됐다는 소식이다. 1985년 11월생이니까 올해 34세에 불과한 세계 최연소 총리인 셈이다. 게다가 지난 10일 ‘마린 내각’의 장관들과 함께 기자회견 하는 장면도 놀랍다. 19명의 장관 가운데 무려 12명이 여성 장관들이다. 놀랄 일은 이 뿐이 아니다. 마린 총리는 중앙당(Centre Party)과 좌파연합당(Left Alliance)등 다섯 정당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런데 이 다섯 정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다. 그것도 스웨덴인당(Swedish People's Party of Finland)만 제외하고 나머지 정당 네 곳이 모두 35세 이하다. 놀라움을 넘어 참으로 충격적이다.

지난 4월의 핀란드 총선에서 사민당은 16년 만에 가까스로 제1당의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안티 린네(Antti Rinne) 총리는 연립정부 운영에 실패함으로써 사퇴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총리 선임권을 가진 사민당이 지난 8일 당내 투표를 통해 교통부 장관이던 마린을 새 총리 후보자로 선출하고 의회 동의까지 얻은 것이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활발한 핀란드에서 여성 총리 배출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핀란드는 1906년 유럽 최초로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으며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한 나라다. 여성 총리로도 마린이 세 번째다. 그러나 마린은 어느 날 갑자기 인기를 얻어 총리에 오른, 그저 운 좋은 정치인이 아니다. 마린은 어린 시절 ‘합법적 동성 파트너를 둔 엄마(rainbow families)’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할 만큼 가정형편도 좋지 못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어린 딸을 두고 있는 마린은 최근 “나에게 인권과 평등은 결코 의견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도덕적 관념의 기초였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열정을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됐다는 뜻이다. 일찌감치 스스로 훈련되고 단련된 큰 재목으로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마린 총리가 20대 초에 정치권에 입문한 동기를 밝힌 내용도 흥미롭다. 핀란드 사회가 시민과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거기에 영향을 주고 싶어서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마린의 정치는 곧 ‘세대 정치’나 ‘여성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인권과 평등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린 스스로 “나는 내 나이와 젠더(gender)에 대해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 할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아주 젊은 여성 총리’에 대한 질문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도 명백해 진다. 참으로 부럽기만 한 핀란드 정치의 높은 수준을 보는 듯하다.

모처럼 만에 핀란드 정치의 주도권을 쥔 사민당도 앞으로 큰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념에 집착했던 사민당 특유의 강성 기류가 완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우편과 항공 부문의 노동자 파업 앞에서 이념은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립정부 파트너 정당이 모두 여성 대표인 상황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 외에는 답을 찾기도 어렵다. 핀란드 사민당이 마린을 총리로 선출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총리에 선출된 직후 마린의 일성도 꽤 감동적이다. “모든 어린이가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 그런 핀란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다지 높은 수준의 담론이거나 뭔가 신선한 얘기도 아니다.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엄마의 평범한 소망, 딱 거기에 맞는 소박하지만 너무도 엄중한 메시지로 들린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그 힘은 곧 ‘정치’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핀란드 정치에는 ‘상식’이 있고 ‘협력’이 있으며 동시에 ‘여성’이 있었다. 그 어디든 상식이 무너지고 대결과 적대가 판치는 곳은 ‘괴물들의 세상’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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