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정치학박사/문화안보연구원 이사

그람시는 1891년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태어났다. 4살 되던 해 하녀가 그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곱추가 된 후천성 장애인이었다. 대학시절 튜린 대학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프롤레타리아의 글을 쓰면서 왕성한 활동을 한 사회주의자이다.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이 창설되자 중앙위원으로 선출됐고, 다음해 코민테른(국제공산당조직)이 창설되자 모스크바에 파견근무도 하였다. 1926년 11월 이탈리아 공산당 투옥사건에 연루돼 1928년 징역 20년 4개월 5일을 선고받은 공산주의 사상범이었다.

그람시는 사상범으로 투옥된 8년 동안 「옥중서한」이라는 책을 집필해 이데올로기 정치사상사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넘어선 독창적인 이론을 개발했고, 이 책이 공산주의 운동에 좋은 전략지침서가 됐다. 그는 1934년 가석방 됐으나 1937년에 뇌출혈로 46세에 죽었다. 그의 이론의 핵심을 살펴보면 혁명을 위해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문화예술적이며 시민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람시는 자본주의가 빈부의 격차로 자체 모순에 직면하다가 필연적으로 공산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막스의 이론을 부정했다.

그람시는 공산사회주의가 경제적 생산이론을 중시하고 정치와 문화예술을 경시하는 점도 비합리적인 것으로 지적했다. 그람시는 막스·레닌의 폭력혁명적 투쟁보다 이데올로기적 여건조성을 기반으로 은밀하게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점을 중시한 대표적 사회주의 천재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그람시는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해 시민사회의 ‘대중적 동의’를 획득하면 ‘계급적 지배’도 가능하다는 것을 갈파했다.

특히 사회의 변화 속에서 시민들의 의식변화는 사회의 구조개혁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해 자본주의 체제의 의식, 관습, 가치관과 함께 언론, 교육, 대중문화 같은 것도 탈취해야할 이념적 헤게모니로 보고 집요한 침투공격을 주장했다. 그람시의 전략적 특징은 민족적, 민중적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파고들어 광범위한 지지계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대중정당을 만들어서 권력을 장악하라는 것이다. 그람시의 전략론에서 핵심은 ‘기동전’과 ‘진지전’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기동전은 부적합하고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 진지전의 일부로서 기동전을 활용했다. 진지전은 일종의 정치적 참호전이다. 국가 내 행정부, 입법부에 장기간에 걸쳐 인적 침투를 통해 조직내부에 진지를 구축하고, 그 진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산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자유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양상은 진지전과 같은 갈등양상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코 단순한 선거전이 아니다.

지난 11월 21일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적법했는지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론이 7(파기환송)대 6(상고기각)으로 뒤집어졌다. 이 판결은 매우 유의미한 것으로 법조계에서 조차도 뜻밖의 결론으로 진보좌파로 기울어진 대법원의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백년전쟁’은 역사 다큐멘터리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적시하여 ‘역사내란’을 일으켰던 방송작품인 점에서 상영을 불허했던 방송위의 제재조치를 ‘취소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12명 대법관으로 총 13명으로 구성돼있다. 사건의 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파기환송의견을 낸 소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창립멤버로 진보성향 인사로 분류돼있다. 12명 중 7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고, 5명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으니 진보적 판결성향이 예견돼 왔다. 결국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보적 판결을 한 것으로 볼 것이다. 이 판결은 이데올로기 전투에서 대법원이라는 법의 고지를 진보좌파진영이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유우파의 패배현상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람시의 이론적 관점에서 분석해본다면 한편으로는 자유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이 치열해가는 현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현정권에서 자유민주체제가 퇴행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람시는 또 혁명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고, 과정으로서의 혁명(revolution as process)이라는 개념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어떠한 혁명이든 시대와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 내란(內亂)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국민선거를 이겨서 집권(執權) 한 것이 나라와 국민의 소유권을 준 것은 아닌데 너무 지나친 국가개조(國家改造)를 하려고 드는 것은 아닐까? ‘정권은 짧고 정치는 길다’는 격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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