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달에 크게 보도된 바 있는 ‘장점마을 사태’가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됐다. 10일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 주민대책위 소속 100여명의 주민들은 강남구 케이티앤지(KT&G) 본사를 항의방문하고 암 발병 사태에 대한 공식사과와 피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케이티앤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막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동안 국가 기관이 기업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만 보아온 탓에 ‘빗장 대응’을 하지 않았나 싶다.

장점마을에서는 2001년부터 공장이 폐쇄된 2017년까지 마을 주민 99명 가운데 22명이 암에 걸리고 14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은 실제로는 암에 걸린 사람은 33명이고 사망자는 17명이며 16명이 투병 중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웃마을 주민들과 비료공장 노동자들까지 합치면 희생자 규모가 훨씬 크다고 말한다.

지하수는 발암물질로 오염돼 사용 못한지 오래 됐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나 몰라라 방치했다. ‘국가는 있었지만 국가가 없는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한스러웠겠는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얼마나 국가와 사회를 원망했겠는가.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장점마을 주민건강 영향조사 최종발표회’를 열고 “비료공장 배출 유해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 간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고 밝혔다. 담뱃잎 찌꺼기인 연초박을 건조할 때 나온 발암물질로 인해 주민들이 집단으로 암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장점마을을 비롯한 많은 지역 주민들이 인근 공장과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연관이 있다면서 공장가동 중단과 국가적 차원의 조사와 대책, 치료와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매번 외면하기 일쑤였다.

잠정마을의 경우도 사태가 알파만파 확대되자 정부기관이 마지못해 나섰다. 2001년부터 꾸준히 민원이 제기돼 왔는데도 국가기관 가운데 어느 곳 한 곳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결국 참사로 발전되고 나서야 대응에 나섰다.

주민들은 막막해 하고 있다.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구제 범위도 제한적이고 배상액도 적어 주민들에게 절망을 안기고 있다. 당면 문제는 어떻게 똑같은 사태가 반복되는 걸 막고 장점마을 주민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덜어주고 치료하고 배·보상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를 모두 다 취한다고 하더라고 암 걸린 주민들과 가족들의 고통이 덜어질 리 없다.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국가가 나서서 내 일이라는 자세로 조치를 취해 나간다면 피해자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가가 제 할 일을 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장점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 더 이상 눈물 흘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새로운 삶의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필요하면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 대책을 내는 등 생존 대책을 내어 놓고 주민들과 협의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치료와 치유를 할 수 있도록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지자체와 환경부 등 국가공무원의 기업과의 유착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 다시는 똑같은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사월마을 등 유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든 마을의 유해 환경과 공장을 조사하고 제대로 파악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내고 지금 고통당하고 있을 마을 사람들이 치료하고 치유 받고 배·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연초박을 전면 폐기하는 법안을 비롯한 안전입법을 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기업 또는 국가기관의 시설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로 암 또는 다른 병에 걸린 주민들에게 정중히 사죄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과문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거나 피해자들 앞에서 재발방지 방안을 공표하면 좋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