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10일 종료됐다. 정기국회 회기 내내 여야가 치열하게 격돌해 추한 국회상을 보여줬고, 마지막 날까지 그 흐름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6년 5월, 20대 국회가 구성된 이후 여야 지도부에서는 합의정신, 의회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거창하게 출발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16년만의 여소야대로 ‘우려 반(半)’에, 또 20년 만에 이뤄진 3당 구도라서 국민의당의 중재 역할을 믿는 ‘기대 반’이었지만 초기부터 여야 대립으로 협의보다는 사사건건 부딪치다보니 20대 국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들의 우려가 들어맞았으니 20대 국회 전반기뿐만 아니라 후반기에서도 민주의회에서의 합의정신은 실종된 채 여야의 불협화음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경노선을 견지해 식물국회, 동물국회상을 보여주면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1948년 제헌국회 이래 장장 71년의 세월동안 파란만장하고 숱한 영욕의 국회사가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발전되고 진일보돼야할 의회민주주의의 산실, 국회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수준 미달의 한심한 작태는 여야 정치인 모두가 부끄러워하고 크게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은 의회 운영에서 협상력과 포용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여당에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의정의 길목을 지키면서 뒷걸음질 국회 상을 연출하게 만든 한국당의 책임도 작지는 않다. 제1야당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과시욕(?)이 20대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를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몰아가면서 비생산적인 국회에 결정적 한 몫을 했던 게 아닌가.

20대 국회 정기국회가 빈손으로 마감한데 대해 정당 지도부가 공동 책임을 져야하겠지만 굳이 어느 당의 책임이 큰가에 대해서는 근래 여론조사 결과가 대변해주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국회 마비 사태에 대한 정당 책임성 인식’ 조사에서 한국당 책임론 53.5%, 민주당 책임론 35.1%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불법인 패스트트랙을 막으려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으며, 이는 합법적 저항”이라고 주장한 한국당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기야 한국당이 발의하고 여야가 합의한 민생법안까지 필리버스터로 막으려고 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와 행동에 중도층까지 등을 돌리는 현상을 자초하게 됐다.

이를 두고 한국당내에서도 원내 전략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체제하의 대여 전략을 실패로 규정하고, 협상력 부족이 제1야당의 입지를 더욱 좁혀 스스로 그 안에 갇혔다는 평가였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 종료(12월 10일)를 앞두고 한국당에서는 의원총회를 열어 나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총선이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원내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선거 대비에 충실하기 위해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은 당헌상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황교안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고, 한국당에서는 지난 10일 새 원내대표가 취임했으니 이는 나경원 전 원내대표로서는 현 정국 돌파에 한계가 있음을 당 스스로 확인시켜준 대목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다.

제1야당이 대여전략에서 필리버스터 전법은 최후의 카드로 남겨 놓아야하건만 너무 일찍 패를 보여 한국당 스스로가 놓은 그 덫에 갇혀 꼼짝달싹 할 수 없으니 작전의 실패다. 20대 정기국회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국회는 할 일이 많다. 여야간 쟁점이 되고 있는 주요 안건 처리과정에서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은 심재철 원내대표의 대여 돌파력이나 협상력이 관건이 되고 있다. 끝내 자당의 이익과 기득권을 고수하고 강경 일변도로 나서는 등 정기국회 내내 민생을 외면한 전철을 밟는다면 한국당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때문에 한국당은 투쟁일변도가 아닌, 실속 위주 원내 전략으로 변화돼야한다. 명분만 세워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으로 투쟁했다가 명분을 잃거나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제1야당의 원내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심 원내대표의 활약상에 기대가 크다. 강경노선으로서는 이미 실패가 확인됐으므로 의회주의를 신봉하고 차원 높은 대여 협상력으로써 꼬인 정국을 풀어나가는 것이 수순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 악화에 기대치 높았던 외교안보 부분에서도 균열되는 등 집권세력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의 정국 주도 실패 원인은 비전과 전략적 협상력 부족이다. 이를 교훈 삼아 심재철 원내대표는 오랜 의정활동을 바탕으로 원내전략의 새로운 무기, 즉 역사와 국민에 대한 무한 책임지는 의회 본연의 정신을 장착․실현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비록 4개월 원내대표 자리지만 한국당의 정체된 국민 지지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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