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계서열 2위 글로벌기업
공격적 경영이 결국 ‘독’이 돼
대우 해체 20년, 희미해진 영광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에 한때 재계서열 2위, 세계경영의 선구자로 꼽혔던 대우그룹의 흥망성쇠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은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해 1998년 41개 계열사, 600개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서열 2위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66년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1967년 1년 만에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그룹의 전신인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실업은 셔츠와 의류원단을 수출하며 가파른 성장을 이뤘다. 1969년 호주 시드니에 국내기업 최초의 해외지사를 세웠고, 1970년부터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며 1972년 국내기업 수출 5위를 기록했다. 1975년에는 종합상사 시대를 열며 수출신화를 써내려갔다.
대우그룹은 창업 10년 후인 1970년대 후반만 해도 현대와 삼성, LG의 뒤를 이어 재계 4위로 오른 데 이어 IMF사태를 겪으면서 1999년 해체 직전에는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의 뒤를 이어 2위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대우그룹의 수출액은 1998년 186억 달러로, 우리나라 수출총액의 14%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경제에 기여도가 컸다.
그러나 부채로 외형을 불려나갔던 김우중 전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은 위기상황에서 도리어 독이 되고 말았다. 김 전 회장은 모든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1997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할 정도로 공격적 경영에 나섰고, 1998년 400%가 넘는 부채비율과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 등으로 급격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결국 1999년 대우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그룹 전체가 해체됐다.
모기업 대우는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로 쪼개지고, 주력 계열사였던 대우자동차는 미국 GM에 매각돼 한국지엠이 됐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그룹에 인수돼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됐다.
또 다른 주력계열사 대우중공업은 기계부문(대우종합기계), 철도차량부문(로템), 조선부문인 대우조선해양으로 분할됐다.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에 편입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이 바뀌었고,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철도차량부문은 1999년 7월 정부 주도로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철도부문과 통합돼 현대의 품에 안겨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제작업체이자 국내 대표 방산업체인 현대로템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