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사동궁 발자취를 찾아서(5)
[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사동궁 발자취를 찾아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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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사동궁(寺洞宮) 사랑채에 조선기원(朝鮮棋院)이 세워졌으나 안타깝게도 1947년 사동궁이 매각되면서 조선기원이 문을 닫고 명동성당 건너편 골목의 건물을 매입해 아래층은 조남철(趙南哲)의 살림집이었고, 2층에 바둑판 14조를 마련해 기원으로 사용했으며, 이후 1949년 대한기원(大韓棋院), 1954년 한국기원(韓國棋院)으로 상호를 변경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의친왕(義親王)이 별세한 1955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도원이 과연 사동궁의 어느 영역에 있던 건물이었는지 살펴본다.

도원은 사동궁에서 의친왕이 손님들과 담소를 나눴던 장소로서 매각되기 전에 조선기원으로 사용됐던 사랑채와 의친왕비(義親王碑)의 처소(處所)인 지밀(至密)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어떤 연유로 그 자리가 요정으로 변신했는지 경위를 알 수 없으나 50년동안 유지되다가 결국 2004년에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종로구청이 도원을 매입한 이후 철거해 2005년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했으며, 이듬해에 사동궁에 있던 한옥을 보수해 인사동 홍보관(仁寺洞弘報館)으로 개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 사동궁 양관(寺洞宮洋館),사랑채, 지밀(至密)에 이어서 의친왕부 사무실(義親王府事務室)을 소개하면 본래 의친왕부는 의화군(義和郡)이 1900년 의친왕으로 진봉(進封)된 이후 정식으로 설립된 궁내부(宮內府)에 편제된 공식적인 기구라 할 수 있으며, 최고 책임자인 의친왕부 총변(義親王府總辯)을 비롯해 40여명의 관원으로 구성됐다고 하니 이 정도의 인원이 업무를 보기 위한 건물도 결코 작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구체적으로 의친왕부 사무실은 사동궁 양관 가는 길에 좌측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인데 매각된 이후 종로예식장(鐘路禮式場)으로 바뀌었으며,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종로예식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대성스카이렉스 빌딩이 세워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사동궁의 핵심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양관과 의친왕부 사무실이 결국 빌딩으로 변모한 것을 보면서 마치 환구단(圜丘團)이 일제강점기의 조선경성철도호텔을 거쳐서 현재 웨스틴조선호텔로 됐던이 왜 황실문화재(皇室文化財)가 결국 호텔이나 빌딩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착잡한 심정 금할 수 없다.

이러한 사동궁이 해방 이후 1947년에 매각되어 1948년부터 분할이 시작되어 결국 공중분해가 되는 불행을 겪었으며, 현재는 당시에 있었던 건축물들은 전부 사라지고 현재 SK건설 동쪽에 위치한 회화나무만이 이 곳에 사동궁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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