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기술경영학 박사

 

“쎈돌” “불패소년” “바둑계의 풍운아” 등으로 불리던 이 시대 진정한 승부사인 이세돌 9단이 바둑계를 홀연히 은퇴했다. 80년대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최정상 기사들 10명을 선발하여 연승전 방식으로 중/일 수퍼대항전을 펼친 바 있다.

당시 중국과 일본, 특히 자국이 세계 최정상급 실력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은 한국이 자기들은 물론, 중국보다 실력이 아래여서 상대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국 정상급 기사들만 추려 정예 승부를 펼쳤던 것이다. 1988년 개최된 응창기배는 한국 바둑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기념비적 대회였다. 중/일 슈퍼대항전을 통해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섭위평(중국명 네웨이핑) 9단을 중국인이 개최한 첫 세계대회의 우승자로 기록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것인데, 우리 한국의 조훈현 9단이 모든 난관을 뚫고 우승을 차지해, 전 국민을 열광시켰으며, 이 쾌거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바둑 수준은 엄청나게 향상됐다.

조훈현 9단의 뒤를 이어 당대를 대표하는 기사는 이창호 9단이었으며, 그를 이어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 천재기사가 바로 전남 신안의 비금도 출신인 이세돌 9단이었다. 조훈현, 이세돌, 당대를 대표하는 두 불세출 기사의 고향이 전남 신안이라는 것이 참으로 이채롭지만,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어우러짐이 천재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정석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성, 치밀한 수읽기, 치열한 승부정신 등으로 무장한 이세돌 9단은 중국바둑의 1인자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구리와의 10번기를 승리하며, 그의 바둑인생에 화룡점정을 찍은 바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3월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이 성사됐다. 대회를 주관한 구글 딥마인드사에서는, 창조적이고 변화무쌍하며, 깊은 수읽기를 가진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이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의 우수성을 선전할 수 있는 상당한 기회를 줄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결과는 모두들 아시는 바대로 “알파고”의 승리로 마무리돼, 딥마인드사는 이벤트에 소요된 비용의 수 천배가 넘는 규모의 엄청난 소기의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물론 이세돌 9단도 어쩌면 인공지능에게서 마지막 승리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인간의 승리를 4국에서 거두어 전 인류에게 큰 기쁨을 준 바 있다. “AlphaGo resigns(알파고가 졌습니다)”라는 화면 속의 팝업창은 알파고를 대상으로 해 인류가 다시는 볼 수 없을 문장이 됐다는 점에서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느껴지는 하나의 역사적 문장으로 기억된다. 이보다 약 20여년 전인 1997년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최초 대결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세계 체스팸피언인 카스파로프와 IBM의 슈퍼컴퓨터인 “딥블루”와의 대결(사실은 바로 전년 대결에서 패배한 딥블루의 재도전)에서 딥블루가 카스파로프를 꺾자, 전 세계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연구원들의 관심사는 당시만해도 오직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으로 옮겨졌다.

“딥블루”에게 패배한 카스파로프가 얼굴을 감싸쥐며, 고통스러워 하던 당시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인간을 넘어선 인공지능의 대단함에 경이로움을 표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무량대수의 변화를 가지고 있는, 동양정신의 진수로 평가받는 바둑을 넘어설 수는 없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 기대감도 존재했으며, 결국 바둑은 기계가 인류를 넘어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구글 딥마인드사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큰 의미를 가진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알파고의 위력은 대단해, 바둑판의 모든 수를 계산하는 단순한 계산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존의 수 많은 기보 참조 및 스스로의 학습을 통해 상대방의 수가 놓였을 때, 이에 가장 적합한 대응 수를 찾는 인간의 신경망 조직과 같은 구조의 역할을 하는 딥러닝 알고리즘 개념을 도입한 인공지능이 완승해, 그 놀라운 성능을 과시했다. 

전 세계의 관심을 끈 본 이벤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기술이 이제 곧 우리 생활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주게 될 것임을 주지시켰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회적 역할, 말로만 여겨졌던 4차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집중적 투자의 당위성까지 일깨워 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풍운아 이세돌은 바둑인으로서뿐만 아니라, IT산업 혁명의 본격적 도래를 알려 준 선도인으로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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