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20대 국회가 끝까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한 예산안 의결 시한도 이미 넘겼다. 국회가 위헌적 행태를 반복해도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별로 없다. 오히려 당리당략을 놓고 벌이는 정쟁은 끝이 없다. 국회선진화법도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국회는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 즉 ‘막장’ 그 자체로 보인다.

199개의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지난달 29일의 국회 본회의는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트 전략으로 인해 열리지도 못했다. 총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시급한 민생법안까지 필리버스트로 막겠다고 나선 정당은 자유한국당 밖에 없을 것이다. 국익이건 민생이건 상식이건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다. 오직 ‘당리당략’만이 그들의 선택지로 보인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도 국민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런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국민도 꽤 많으니 달리 할 말도 없다.

우선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마저 이 모양으로 가는 것은 자유한국당 책임이 크다. 필리버스트가 아무리 합법적인 방어수단이라 하더라도 ‘막을 것’과 ‘막아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면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이 제출한 법안들까지 그들이 앞장서 막아선다는 것은 ‘공당’으로서의 자격도 없다. ‘좀비정당’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나경원 원내대표 탓으로 돌리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정당체제의 구조적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사태는 거대 양당의 독점적 기득권체제가 만들어 내고 있는 ‘정치적 기형’에 다름 아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방식’이라면 그 앞에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무한 정쟁과 대결, 막말과 증오, 몰상식과 궤변은 그 부산물에 다름 아니다. 나 원내대표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거는 “이런 막장 정치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이었다. 그러나 개헌 논의마저 당리당략을 넘어서지 못해 좌초되고 말았다. 이제 차선의 방안은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거대 양당의 독점적 기득권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안도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연동형 비례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정당정치가 비로소 경쟁체제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참에 내년 총선에서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면 다음 순서는 개헌 논의를 공식화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기 대선은 ‘제7공화국’을 개막하는 원년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일보 전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같은 탁상공론은 그만둬야 한다. 언제까지 청와대 권력을 중심으로 한국의 모든 것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분열의 정치’를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당정치가 경쟁체제로 바뀐다는 것은 정당과 정당 간의 관계가 자유롭고 공정하며 동시에 책임도 명확히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연장선에서 정당 간 연합, 즉 연립정부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연립정부는 우리처럼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흔치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이든 만능은 없다. 그 나라가 처한 정치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독특한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창조적으로 발명할 수 있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특정 야당이 사실상의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면 최소한 ‘막장 정치’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과반 의석으로 국회를 주도하고 다른 군소정당과도 협상하면서 국정안정을 도모하는 데 총력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 정당이 ‘막가파식 필리버스트’를 통해 국회를 마비시키는 일도 생각하기 어렵다. 당장 필리버스트를 차단하는 힘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이 비로소 정치의 전면에 서게 되면서 ‘정치복원’이 이뤄지고 동시에 ‘대화와 협상’의 원칙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한국형 연립정부’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라 하겠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총선 이후 연립정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당 간 경쟁이 제대로 정착되는 선거가 될 수 있으며 거기서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회도 좋고 선거공약도 좋다. 그렇게 된다면 21대 국회 전반기는 개헌논의가 제대로 성숙할 토양이 마련되는 셈이다. 제7공화국 원년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연립정부의 경험은 결정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후보 시절 연립정부 구성의 필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물론 대선을 앞둔 계산법이었지만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사실상의 연립정부를 구성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협치는 기본이요, 개헌도 이뤄졌을 것이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의 무한 정쟁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나라와 여론을 둘로 갈라 치는 ‘분열의 정치’가 들어설 공간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 박원순 서울시장도 자유한국당 때문에 국회가 아수라장이 됐다며 총선 이후 ‘연립정부’로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제안을 했다. 자유한국당의 ‘인질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립정부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적절한 해법으로 보인다. 21대 국회에서 교섭단체가 4~5개 된다면 연립정부의 힘은 막강해질 것이다. 온갖 궤변과 억지로 국회를 짓밟는 ‘막장 정치’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연립정부’의 가치를 여야 각 정당이 좀 더 전향적으로 고민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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