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들을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에 따라서 인생의 깊이가 결정된다. 하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인생에서만 느끼는 감정의 양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TV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마치 내 감정인양 끌어와서 느끼고 즐긴다.

‘타인의 상황과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공감력이라고 한다. 당연히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만큼 인생을 풍부하게 느끼며 살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공감력’은 공감하는 사람뿐 아니라 공감 받는 사람까지 기분좋게 해준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함께 짐을 들어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공감력이 빠지면 짐을 들어주기는커녕 더 얹어주는 격이 될 것이다. 언젠가 아는 사람이 사춘기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자기네 아이들은 그런 일로는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다고 말해서 민망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없는 말을 지어내서 같이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침묵은 지켰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있는 말에 반하는 감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공감력이 부족한 경우이다.

이런 유머가 있다.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주인에게 “손들어!”라고 외쳤다. 그런데 집주인이 “어머 죄송한데요. 제가 오십견이 와서 손은 들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자신도 오십견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도둑은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자신이 오십견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으며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치료받은 병원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병원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고나자 도둑은 또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병원비까지 지불했다고 한다.

공감력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유머이다. 이렇게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 도둑이 될 리가 없다. 이렇게 공감력은 때때로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가끔 강의할 때 공감력 좋은 청중을 만나면 정말 강의가 잘 된다. 필자만 그럴까? 대부분의 강사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강사들에가 가장 좋은 대상은 40대 이후의 주부들이다. 어느 정도 삶의 경험도 쌓이고 표현력도 좋은 나이대여서 그럴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서양속담이 있는데 진짜 춤추게 하는 것은 바로 ‘공감력’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공감력이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감력은 상대방과 같은 감정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절대 상대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가르침은 절대 효과가 없다. 어설프게 가르치기 보다는 상대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이 스스로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지나치게 위로하려하는 말도 때로는 위로가 되기보다는 상처가 된다고 한다. 때에 따라서는 어설픈 위로의 말보다는 함께 울어주는 것이 도움 되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정말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휠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요즈음 몇 몇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공감해주는 한 두 사람만 있어도 극단적인 결정은 안 한다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일, 작지만 사회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공감력은 공감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의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고, 더욱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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