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어져 결국 활자 인쇄를 실용화하는 데 주춧돌이 됐습니다. 이뿐 아니라 스마트폰은 외국보다 국내에 비교적 늦게 도입됐으나 기기 및 기술분야에서 세계 여느 나라보다 급성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빨리 이뤄야 한다’는 마음가짐 덕분이죠.”

시공간을 뛰어 넘어 금속활자와 스마트폰을 비교하는 이는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다. 한국이 활자 인쇄를 일찌감치 실용화한 까닭은 예부터 지식정보 전달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진흙으로 만든 활자(교니활자)를 통해 활자의 원리를 발견했으며, 한국이 금속활자를 처음 만들어 활자를 인쇄하는 데 실용화했죠. 독일은 구텐베르크 성경을 앞세워 활자 인쇄를 보편화 및 상업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다시 말해 선조들은 책을 빨리 찍어내기 위해 금속활자를 고안했다. 이전까지는 책을 소장하려면 원본을 필사하거나 목판으로 찍어내야 했다.

금속활자가 발명된 시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간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즉 <직지>는 세계에서 인정받은 최초 금속활자본이다. 하지만 <상정예문(詳定禮文)>,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최이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등의 금속활자본이 <직지>보다 140여 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고려 말 상황은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정중부의 난, 무신란 등을 통해 무신정권이 정권을 잡았다. 무신정권의 핵심인물인 최이 장군은 자신의 뜻과 맞는 문신들을 등용해야만 정사를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해 ‘정치적 교화’의 목적으로 문신 이규보 등을 내세워 책을 제작했다.

하지만 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목판은 책의 한 면당 목판 한 판이 소요돼 효율성이 높지 않았다. 또한 목판 활자는 내구성이 약하고 인쇄 도중 활자가 움직이거나 떨어져 실제 사용하는 데 불편했다. 자연스레 ‘글자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글자’ 곧 금속활자가 등장한 것이다.

금속활자본(1377)으로 유명한 <직지>는 사실 목판본(1378), 필사본(1613)도 있다. 금속활자본은 현재 하(下)권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목판·필사본은 각각 상하권이 전해져 내려고 있다.

“목판본 상권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금속활자본 하(下)권을 참고해 금속활자본 <직지>를 다시 찍어낼 계획입니다. 이는 금속활자 기술을 자세히 밝히고 우리 인쇄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죠. 올해부터 2015년까지 ‘고려시대 금속활자 복원사업’을 진행할 겁니다.”

이에 따라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금속활자장 이인호 선생과 함께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직지> 하권을 인쇄한 1만 4000자의 금속활자를 고려시대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그동안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일부 복원된 적은 있으나 <직지>에 사용된 모든 글자를 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물관은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대량생산이 어려운 밀랍주조법으로 수많은 활자를 어떻게 제작했는지 비밀을 풀어내는 시도도 추진할 예정이다.

흔히 한국 최고(最古)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200년을 앞섰다고 말한다.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성경은 <직지>보다 78년 후에 만들어졌지만 <선정예문>과 비교했을 때 220여 년 뒤에 발간됐습니다. 물론 가톨릭 및 기독교의 복음화로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지닌 영향력이 매우 컸습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영향은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구텐베르크 인쇄는 소수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르네상스를 맞아 대중으로 파고들었으며, 곧 종교개혁 시민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 자본 및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다리역할을 했다.

하지만 황 학예연구실장은 “활자를 실용화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직지>는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인류의 인쇄 역사와 기술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물이다’라고 설명돼 있다. <직지>가 비록 프랑스에 있으나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더 나아가 유네스코가 <직지>의 고향 청주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네스코 직지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상은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 보호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며 2년마다 한 번씩 시상식을 열죠. 2005년에 시작했으니, 올해에도 장이 마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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