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선서장면.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19.12.2
윤봉길 의사 선서장면.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19.12.2

월진회 조직해 농촌 개혁운동 추진
1932년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서 순국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윤봉길을 2019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독립기념관은 윤봉길 의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2월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윤봉길은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며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1921년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동시에 ‘동아일보’와 ‘개벽’ 등을 구독하며 신문물과 신사상을 받아들였다.

이후 윤봉길은 1926년 야학당을 개설해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27년에는 한글교육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농민독본’을 집필해 교재로 사용했다. 1928년에는 일제의 식민지배로 피폐해진 농촌을 부흥시키고자 부흥원을 설립하고 이듬해에는 월진회를 조직해 농촌 개혁운동을 추진했다.

주학생운동을 통해 농촌 개혁운동보다 민족 독립이 먼저라는 것을 깨닫은 윤봉길은 1930년 3월 중국으로 망명해 다롄과 칭다오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김구를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뜻을 전달했다.

그러던 중 1932년 4월 29일 홍커우공원에서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일본의 상하이 침략 승리 기념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투탄의거를 결행하기로 결심한 후 의거 3일 전인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의 기념식장.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19.12.2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의 기념식장.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19.12.2

거사 당일 윤봉길은 기념식장에 참석한 시라카와 대장과 노무라 중장 등이 있는 단상 위로 폭탄을 던져 침략 원흉을 처단했다. 이 의거는 세계 각지에 보도돼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알렸으며, 중국 국민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

윤봉길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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