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신발.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신발은 우리 삶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각자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발모양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일정한 기준 치수에 맞춰 미리 지어 놓고 파는 기성화가 발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찾는 것이 ‘수제화(手製靴)’다. 기계를 쓰지 않고 발모양에 맞춰서 사람의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 내기 때문에 더 특별한 신발이다.
“오랜 시간 신발을 만들어오며 참 뿌듯했죠. 많은 보람을 느꼈어요.”
지난 29일 서울의 한 수제화 작업공방에서 만난 40년 경력의 제화공 장상범(60대)씨는 구두를 두드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일하는 곳은 80년간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송림수제화’로 전국에서도 몇 안 되는 제화공 가문 중 하나다.
그를 따라 시커멓게 먼지 앉은 계단을 올라갔더니 허름한 작업장이 나왔다. 가죽 냄새와 접착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쉴 틈 없이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 벽면을 빼곡히 채운 수제화 목형들은 그가 제화공으로서 살아온 삶을 잠시나마 짐작케 했다.
그 곳에는 30~40년 경력의 장씨와 같은 제화공들이 의자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장갑 없이 작업을 하는 이들의 손은 하나같이 가뭄난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바세린도 발라봤지만 소용 없더라구요.(하하) 하지만 장갑 끼고 작업을 하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고 섬세한 작업을 할수 없어서 안끼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니 감각이 무뎌져서 이젠 별 감각이 없죠.”
수제화는 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호황기를 누렸으나, 1990년대 이후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과 경기침체, 임대료 상승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수제화란 그져 비싼 신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거리가 많아서 하루하루가 재밌었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 일거리가 많이 줄었죠.”
최근 사라져 가는 골목상권을 되살리는 노력으로 수제화가 매스컴을 통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맞춤구두, 즉 수제화 산업은 이미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화들에 밀려 사양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김씨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천직”이라며 “지금까지 해왔으니 어떻게 보면 장인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제화 산업 현실은 너무 힘들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버스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이젠 어딜 가나 신발부터 눈에 띄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종종 제가 만든 신발을 신고 계신 분이 있더라구요. 가장 뿌듯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