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상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원칙이 큰 흐름이고 예외는 아주 특수한 경우에 적용될 보조적인 것인데 요즈음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기류는 예외가 원칙을 쫓아내는 흐름이다. 탈법·불법·위법이나 반칙·변칙이 마치 원칙인 것처럼 전도되고, 원칙보다 예외를 천금처럼 생각하며 원칙위반임에도 예외적 항변거리를 총동원하는 엘리트집단의 일상화된 모습을 보며 처연함을 느낀다. 원칙보다 예외를 숭상하는 정치권은 그 예외적 적법성과 합목적성을 방패로 해 상대를 공격한다. 고속도로 같은 원칙이 있는데도 경운기나 다닐법한 농로를 길이라고 강변하며, 최악의 예외규정으로 법의 지배와 적법절차를 정당화하려고 난리를 친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필수적 과정인 토론과 대화와 타협은 온데간데 없고, 두 번 다시 대면하지 않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각 정당 대변인은 내로남불의 성명을 마구 쏟아 내고 있다. 지난날 정당대변인의 성명은 상당히 품위 있는 비유와 고전적 해석, 역사적 교훈 등을 잘 섞은 명문이어서 그 시대의 지성인에게 오래 회자되곤 했다.

요즈음 정치권의 문법은 하나같이 저급하고 치졸한 구역질나는 어법을 총동원해 상대 정당이나 정파 또는 반대의견을 가진 정치인을 완전히 매장시키려는 독기를 품어 막가파의 경연장 같다. 냉철한 이성은 어디 가고 저열한 감정만이 표출되는 저 소음공해, 어쩌면 저토록 내공 없는 빈깡통 소리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변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지도자의 문법은 국민정서는 물론이고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백해무익한 언어의 폭력이자 공해이다. 정치권은 국민을 무시하고 망나니처럼 온갖 저질 쇼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주권자인 국민을 투명인간화 하는 패륜은 법을 떠나 도덕적으로 회생불능의 부패덩어리이다. 이 판으로 무슨 정치선진화를 향도한단 말인가. 주권자인 국민의 힘으로 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 유일한 방법은 선거혁명을 이루는 것 외에는 없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교육적 소양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정치권 정화를 통한 국태민안·국리민복의 정치판을 만들 수 있을까? 

첫째, 국민의 의식개혁이다. 주권자가 스스로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치권의 패가르기에 동원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저들의 소아적 파행에 줄을 서서, 국민의 명예를 팔아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그들의 범죄(?) 현장에서 공동으로 죄를 범하는 공동정범이 되거나, 그들이 죄를 범하게 교사하여 교사범이 되거나, 그들의 범죄를 방조하여 종범이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저들의 잘못을 추상같이 나무랄 수 있는 공의로운 국민의 법치적 품격이 요구된다.

둘째, 정당정치의 회복이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공적인 정치조직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정당을 자유케 해야 한다. 특히 여당은 청와대의 출장소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야당은 현실안주에서 벗어나 진취적 정치비전을 제시하며 대의에 따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셋째, 정권이나 정부는 주요정책을 우격다짐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겸손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책의 성공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재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법안인 공수처법, 선거법은 물론이고, 남북관계, 4강 외교, 경제, 에너지, 교육, 국방, 복지정책 등에 대한 무리한 고집보다는 국민의 공감을 통한 신뢰회복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세종은 한글도 공법(세법)의 시행도 국민적 동의를 얻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설득과 인내의 왕이었기에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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