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에서 한 여성이 택시 안에서 분신자살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이슈가 됐다. 당시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에 따르면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면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은 나라와 연령대를 망라하고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문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친한 친구와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고, 분을 참지 못하는 사이 이미 친구는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도 순식간이다. 욱 하는 순간 부모나 자식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우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으니 참으로 말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기분이 안 좋다는 말도 있다. 물론 개인의 성향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자살, 혹은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렇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비단 당사자의 잘못만으로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병폐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지병과 배고픔으로 쓸쓸히 죽어갔던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타살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거짓말쟁이들이 사는 마을에서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 바보이고, 비정상처럼 보인다는 우화가 있다. 또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바보 만든다는 말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는 웃지 못할 말도 있다. 양쪽이 대화로써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작정 자신의 의견만 피력하다보면 어느 한쪽은 열세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파업이나 시위, 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데에 과연 우리는 죄 없다 할 수 있겠는가. 상대를 몰아붙이고 탓하기 전에 단 몇 초만이라도 역지사지를 생각한다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살 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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