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기성세대의 경우 졸업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온다. 졸업식 전날 밤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둔 설렘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겹쳐 잠을 설치던 기억을 누구나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졸업식 시즌이 되면 변태적 졸업식 뒤풀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전통이 되다시피한 교복 찢기와 밀가루나 케첩 뿌리기 등은 이제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강압적인 옷 벗기기, 스트리킹, 속옷 차림으로 바닷물 뛰어들기 등 언론의 비판적인 용어를 빌면 ‘졸업 광(狂)파티’까지 등장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막장 졸업식 뒤풀이의 폐해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서인가? 마침내 경찰이 나섰다. 경찰은 사태가 우려되는 학교 주변에 순찰차와 정복 경찰을 배치해 순찰하는가 하면 사복경찰까지 교문 주위에 배치하고 나섰다. 막내딸 졸업식이 열린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건전한 졸업식을 이루자’는 내용의 계도성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는 교사들 뒤에 무전기를 든 경찰이 일부 행색이 수상한 학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었다. 또한 졸업식 후에도 학생들이 조금만 모여 있으면 곧바로 경찰이 다가가 조속한 귀가를 독려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축하하고 즐거워야할 졸업식장이 경찰의 감시 눈초리로 인해 긴장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학생들의 졸업식 뒤풀이 일탈행위가 막장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일종의 파티라 해야 할 졸업식장이 경찰의 경계망에 휩싸여야하는 상황은 좀 지나치지 싶었다. 실제로 이를 보는 학생들도 썩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었고 학부모들도 언짢아하는 기색이었다.

과거에도 졸업식에는 항상 말썽이 뒤따랐다. 해방감에 젖은 학생들, 특히 고교졸업생들은 지나치다 싶은 행동을 되풀이해 해마다 졸업식 때만 되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60, 7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강압적인 단속과 선도에도 불구하고 음주, 고성방가, 교복과 모자찢기 등이 성행했다.

서울시의 경우 일부 형기 방장한 학생들은 종로거리 등을 스크럼 짜고 돌며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마구 쏘다니다 한 친구집에 모여 밤을 새우는 게 관례였다. 그러다보니 당시 신문을 뒤적여보면 졸업시즌에는 반드시 밀가루를 뒤집어 쓴 학생들이 찢어진 교복을 입고 질주하는 사진이 사회면 스케치 사진으로 등장하곤 했다.

심지어 과격파들은 유흥가는 물론 윤락가로까지 진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세태를 고발한 당시 한 신문의 르포기사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만하다.

패싸움을 벌이는 고교졸업생들의 사진을 곁들인 ‘유흥가로 직행한 고교졸업 탈선’ 제하의 기사에는 ‘도심 뒷골목에 몰려 광란’ ‘미처 교복도 벗지 않은 애송이 남녀 고교졸업생들이 밤의 술집과 유흥가에 차고 넘친다’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소리치고 부녀자를 희롱하며 30-40대 부녀자들에게까지 함께 술 마시자며 승강이를 벌인다’ ‘밤이 깊어가자 남녀고교졸업생들은 졸업장을 든 채 몽롱한 취기와 광란의 열기 속에 흐느적거렸다’ 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시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극단적 행태는 단지 성인으로 도약하기 위한 단 한번의 단순한 통과의례라고 보는 게 옳을 성 싶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태가 아니라면 대학입시라는 허들을 넘기 위해 저당잡혔던 ‘3년의 청춘’을 보상받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성 몸짓으로 이해해주자는 것이다.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들도 다 청소년시절에 한두 번씩의 반항적 일탈행동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지나면 다시 일상적 현실로 돌아와 ‘자기 앞의 생’을 살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지나친 졸업식 뒤풀이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행태가 집단범죄행위로까지 치닫지만 않는다면 경찰까지 동원해 강압적 분위기를 연출하지 말고 인생에 단 하루만 벌일 수 있는 해프닝의 특례로 대범하게 봐주자는 것이다. 물론 강제로 후배나 동료들의 옷을 벗게 하는 따위의 도를 넘어선 막장 뒤풀이는 적절하게 통제해야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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