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원내대표, 무려 4선의원이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여성으로서 서울에서 내리 당선될 정도라면 그 정치력은 이미 검증 받은 것과 다름 아니다. 제1야당 원내대표 자리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이런저런 설화에 휘말리고 여론의 비난이 쏟아질 때도 열악한 자유한국당 현실을 감안한 도발적 담론쯤으로 이해했다. ‘대표’라는 자리가 그럴 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서 그만한 대중성을 가진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점도 고려할 대목이었다.

그러나 열 번을 양보하더라도 이번의 ‘망언’은 결코 용납하기 어렵다. 그간의 나경원 원내대표 언행을 이해하고 믿었던 다수의 국민들을 향해 뒤통수를 치는 ‘반역적 언행’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볼튼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내년 4월 총선 직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정상회담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며 “한반도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동료 의원들에 따르면 최근 방미 때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총선이 있는 내년 4월 임박해서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이번 방미 때는 그런 말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의총에서 발언한 내용을 동료 의원들이 전한 것을 어찌 거짓이나 왜곡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언행 자체가 지극히 불순하며 한반도 평화와 국민의 안위까지 선거용 당리당략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한미 양국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 원내대표가 내년 선거를 위해 북미 북핵협상까지 스케줄을 조절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 자체가 국익과 국민에 대한 ‘반역’에 다름 아니다. 북핵문제를 풀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보다 내년 선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지 귀를 의심할 정도이다.

하지만 파장이 커지고 비난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나 원내대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적반하장 격으로 “내가 틀린 말을 했느냐”는 식이다. 심지어 일부 동료 의원들까지 나 원내대표를 엄호하면서 정치공세 하지 말하는 식이다.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 이쯤 되면 더 필요한 말이 없어 보인다. 자유한국당의 현실과 나아가 한국의 정치판이 이런 수준에 있음이 그저 통탄스럽고 참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냉정한 시선으로 다시 물어야 한다. 나 원내대표,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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