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개성있는 문체의 윔블던 테니스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빠져들었다. 윔블던을 ‘테니스의 대성당’이라 하고, 테니스 경기를 미사에 비유했다. 매일 잔디 코트 18곳에서 테니스라는 종교를 위한 미사가 아침부터 해질 녘까지 집전된다고 했다. 볼 줍는 볼 퍼슨(ball person)은 미사 집전을 거드는 복사(服事)로 표현했고, 흰 옷만 입고 출전하는 선수들 중 가장 인기있는 로저 페더러를 ‘테니스의 제우스’라고 묘사했다. 미사처럼 선수들이나 관중들 모두 윔블던 대회 규칙을 철저히 따른다고 했다. 경기장에 광고 간판이 없고, 전광판에는 국적 표시 없는 선수 이름과 시간, 점수 상황밖에 없었으며 관중들의 복장 에티켓까지 자세하게 전했다.

조선일보 양지혜 기자가 지난 7월 조선일보에 2019년 제133회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취재, 대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양지혜의 윔블던 러브’라는 컷 제목으로 9회 기획특집으로 연재한 테니스 기사는 정말 소설보다 더 재미있었다.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스포츠와 연결해 기존의 테니스 기사와는 새로운 시각의 관점을 담아내 큰 관심을 끌었다. 경기 내용과 결과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수, 심판, 자원봉사자, 관중, 취재 기자 등 가는 곳마다 바쁜 발품을 팔면서 생생한 얘기를 들려줬다.

로저 페더러, 노바크 조코비치, 세레나 윌리엄스, ‘깜짝 스타’ 코리 가우프, ‘루마니아판 박세리’ 시모나 할레프 등 올 윔블던의 주역 스타들의 기사를 스토리텔링으로 전했다.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남자단식 결승대결을 ‘천사(페더러)와 악마(조코비치)’, 가우프를 ‘공주’, 애를 낳은 윌리엄스를 ‘돌아온 모델’ 같았다고 기사에서 표현했다. 선수 말고도 심판, 소방관, 자원봉사자, 볼 퍼슨, 관중, 각국의 취재기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취재원 이름 등을 소상하게 밝히며 직접 인용한 말도 덧붙였다. 기사를 돋보이게 한 것은 유럽의 역사와 대중들의 삶을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스포츠와 연결했다는 사실이다. 윔블던 테니스의 높은 인기를 보여주기 위해 지중해 이베리아 반도의 끝인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온 프라미라 추가니라는 50대의 여성관중을 소개했으며, 런던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의 살림 형편이 어려운 루마니아 팬들이 할레프가 윌리엄스를 꺾고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해 영국인의 자존심인 윔블던에서 긍지와 희망을 선물 받았다고 전했다. 마치 21년 전 박세리의 ‘하얀 맨발샷’을 보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한국인을 본 것처럼 느꼈다고 밝혔다.

180cm의 큰 키인 양지혜 기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2012년 조선일보에 입사, 산업부 등을 거쳐 체육부 기자로 2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대회를 한국 언론에서 거의 하지 않은 현지 취재를 통해 뛰어난 영어능력과 취재감각으로 생생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윔블던에는 매년 1천여명의 각국 기자가 신규 취재 신청을 하고, 이 중 50여명만 허가를 받는다. 양지혜 기자는 윔블던 홈페이지에 무작정 연락해 윔블던 관계자와 수 차례 상의하면서 직접 작성한 취재 신청서를 보내 취재카드를 받게 됐다고 한다.

25일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가 제정한 제1회 스포츠미디어 어워즈 취재분야 대상을 수상한 양지혜 기자는 “스포츠에서 극한적인 노력을 하는 페더러와 같은 선수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각본없는 드라마’ 스포츠가 전하는 정의와 가치는 여의도와 서초동 사람들이 많이 본받았으면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테니스를 모르는 사람도 테니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양지혜 기자의 윔블던 테니스 기사에서 보듯 시와 소설에 결코 비견될 수 없는 스포츠의 무한한 감동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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