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주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세상을 놀라게 한 진주 아파트 방화 및 살해 사건 최종심이 나왔다. 검사 구형도 사형이었고 판사의 선고도 사형이었다.

재판부는 사형 판결을 내리면서도 “사건의 경위를 살펴보면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참담함을 느끼고 피고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비극이 일어난 것에 대해 전적으로 피고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처벌에 그칠 게 아니라 범죄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옳은 지적이다.

검사는 범죄의 계획성을 강조했다.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로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달라고 했지만 피의자가 조현병 치료를 68차례나 받았다는 사실과 치료를 중단하고 증세가 심화되었다는 사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여러 사람을 공격했다는 사실, 가족이 경찰과 검찰에 입원치료를 실행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해 버린 건 외면했다.

국선 변호인은 “이 불행한 사건의 책임을 오로지 피고인 한 명에게 묻고 끝낸다면 제2, 제3의 피고인이 나올 것”이라면서 “조현병 환자에 대한 편견과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한 고민을 더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안인득은 지난 해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 자신이 사는 4층 아파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밖을 향해 대피하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다섯 명을 죽이고 6명에게 자상을 입혔다. 10명은 연기를 마셨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이다.

조현병은 체계적인 예방책이 나오는 게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그것까지는 기대하지는 않겠다. 병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내야하고 조현병이 심해져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은 강제적으로라도 치료하는 법적 방안을 확보해야 한다. 안인득씨의 가족이 조현병을 앓고 있던 아들을 치료해 달라고 국가기관에 요구했지만 입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묵살 당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폭력성을 보이는 경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범죄로 연결될 수 있고 누군가가 희생될 수 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도 범법자가 되고 일생 내내 감옥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또 가족과 친지들은 어떤 고통을 당할지 모른다.

이번 사건의 전개 패턴을 보면 이전에 발생한 다른 조현병 관련 참사와 매우 흡사하다. 일단 사건이 터지면 언론을 통해 범죄의 잔인함이 세세히 묘사된다. 사회적 공분이 일어난다. 다음으로 얼굴을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진다. 얼굴이 공개되면 분노는 더욱 증폭된다. 분노에 분노가 쌓이면 너무나 쉽게 괴물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결론은 쉽게 난다. ‘괴물’은 이 땅에서 제거해야 하는 존재다. 판결을 통해 격리한다.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물어야 한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애매하다 느끼겠지만 그 대상은 분명하다. 우선 국가와 사회에게 물어야 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와 ‘나’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나 자신에게 묻는 건 더욱 중요하다. 누군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인데 지금까지 관심을 갖지 않고 방치해 왔던 국가와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 사회가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2, 제3, 제100, 제1000의 안인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때마다 검사 나리의 ‘영원한 격리 어쩌구’ 하는 말로 시작해서 ‘반사회성과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할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는 판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마무리되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안인득의 피해망상 증세는 우리 사회와 대한민국이 심화시켰다. 심화 책임까지 국가가 지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때 국가는 국민의 건강 악화, 나아가 질병의 악화에 책임이 있다. 책임을 외면하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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