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백제사] 백제 정절의 화신 도미부인, 눈먼 남편을 찾은 천성도는 어디인가(3)
[다시 쓰는 백제사] 백제 정절의 화신 도미부인, 눈먼 남편을 찾은 천성도는 어디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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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오두산성에서 수습한 고구려 와편
오두산성에서 수습한 고구려 와편

파주 오두산성(烏頭山城)을 가다

오두산성은 경기 파주시 탄현면(炭縣面) 성동리(城東里)에 있는 고대의 산성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인 파주 오두산의 정상(해발 119m)을 중심으로 축조된 길이 약 1200m의 백제시대 퇴뫼식 산성이다. 지금은 정상부에 통일전망대가 세워져 옛 성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게 됐다.

성의 축조방식은 사면이 가파른데 서쪽은 임진강, 남쪽은 한강, 북쪽은 산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성의 답사 기록을 보면 서 안쪽에 높이 1~1.5m, 길이 약 30m, 폭 6~7m에 이르는 당시의 성벽이 정연하게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남아 있는 석벽은 일부 성돌을 정연하게 다듬어 들여쌓기 식으로 축조한 것을 보면 고구려 양식이다. 고구려가 이 성을 점령한 후 중요성을 인정, 대대적으로 보축한 것을 알려 준다. 즉 기초석 위에 5~15㎝의 지대석(支臺石)을 들여쌓기를 하고 안쪽은 모두 돌로만 채운 뒤채움석 형식임을 보여준다.

글마루 취재단은 고구려식 석성의 반대 쪽 조금 낮은 곳에서 백제 시대 축성의 흔적을 찾았다. 할석(割石)된 돌을 흙과 더불어 다진 판축 형태이며 지금은 약 20m 남아 있다. 이 주변에서 고대의 많은 와편이 산란하고 있다. 이 와편은 현재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대지 유구에서 공사를 하면서 흘러내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두산성의 역사를 증명하는 백제, 고구려, 신라 역사의 유물이다.

학자들은 이 산성의 지형 여건으로 보아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에 기록된 각미성(閣彌城)과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원년조(391년), 백제본기 아신왕(阿莘王) 2(393)년조 등에 나오는 백제 북변의 관미성(關彌城)으로 비정한다. 특히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오두산성을 백제의 관미성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 성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역사서 및 지리지에 전하여 온다. 그 만큼 후대에도 요새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의 명칭도 오도성(烏島城), 오도성산성(烏島城山城), 오두산성(鰲頭山城), 오두성(鰲頭城) 등 다양하다. 글마루 조사단의 답사에서는 이 성에서도 많은 고대 와편을 수습할 수 있었다. 격자문, 사격자문과 승석문계의 적색 고구려 기와에서부터 회백색의 연질 백제 와편까지 고대 오두성의 흥망성쇠를 알려주는 유물들이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上’ ‘草’가 새겨진 명문기와를 찾았다. 이 기와는 굵은 무늬의 고구려식 문양을 보이는 평기와로 색깔은 흑색에 가깝다. ‘上部’는 충주에서 찾아진 건 흥명금동불 광배에도 등장한다. 즉 “건흥(建興) 5년 병진년에 불제자 청신녀(淸信女) 상부(上部) 아엄이 석가모니상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불법을 만나 듣기를 원하며 일체중생이 모두 이와 같이 바란다”라는 것이었다. 한 역사학자는 ‘상부’는 고구려 5부 가운데 순노부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오두산성은 고구려에 정복되어 상부 계급이 진주했던 것인가.

상부라고 적힌 고구려 와편
상부라고 적힌 고구려 와편

일미도는 도미부부가 만난 곳일까

‘천성도(泉城島)’로 비정할 수 있는 주목되는 기록들이 있다. 바로 <동국여지승람> 산천(山川)조에 나오는 ‘일미도(一眉島)’에 관한 기록이다. ‘일미도는 현 북쪽 10리 지점에 있는데 물이 불으면 잠긴다(一眉島 在縣北 十里水張則沒)’ 또 조선시대 <교하읍지>도 ‘교하군 서쪽 20리 지점의 임진강의 하류에 있고 진흙이 많이 흘러나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에도 일미도(一眉島)가 표기되어 있으며 ‘물이 불어나면 섬이 잠겨 버린다’고 쓰여 있다.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임진강 하류의 하중도(河中島)에 ‘일미도’로 표기되어 있다.

국문학자 전 충남대 도수희 교수는 일미도를 도미부인이 남편을 만난 곳으로 비정했다. 그는 신동아 2003년 11월호에 ‘일미(一眉)의 ‘일’은 천(泉)의 백제 말인 ‘얼’과 비슷하고 ‘미’는 ‘매’와 비슷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 앞서 백제어 ‘얼매’가 고구려에 의해 ‘천성’으로, 신라에 의해 ‘교하’로 개명됐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떠내려가는 조각배가 서해 바다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멈출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일미도일 수밖에 없다. 이 섬에 도미가 먼저 도착하였고, 이어서 그 부인이 도착하여 극적으로 만났다고 봐야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 섬은 남북을 갈라놓은 비무장지대여서 답사가 어렵다. 이 섬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답사할 날은 언제일까. 비운의 비무장지대 남북을 가른 철책선이 허물어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천성도가 일미도로 고증되면 이곳에 도미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징표라도 해 놓았으면 한다.
 

오두산성 표지말
오두산성 표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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