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이 22일 도쿄 공관에서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유예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노 방위상은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이 22일 도쿄 공관에서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유예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노 방위상은 "지소미아 종료 유예가 일시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며 "지소미아가 제대로 연장되는 것이 중요하므로 한미일 3국이 연대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온유 객원기자] 한일관계가 개선될 국면을 보이다 다시 긴장 관계로 접어든 가운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이라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전후로 일본이 보인 태도에 한국정부가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합의된 내용을 의도적으로 포장해 자신들이 유리한 측면으로 일본 현지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있다며 이런 식의 행동이 계속된다면 한일 협상진전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장 배경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복원 재검토 의향을 먼저 전달해왔기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로 연장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청와대는 정부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조건부 연장’ 안을 일본 정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소미아 21조 3항은 ‘90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할 경우’에만 만료일에 맞춰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일단 종료되지 않은 채로 협정상 만료일을 넘겼으니 2020년 11월 22일까지는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나 종료 연장이 발표된 이후 지소미아에 대한 입장차가 달리 표명되며 한일관계가 큰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먼저 한국은 수출규제 철회를 전제로 조건부 유예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일본은 이번 지소미아 종료 유예는 일본이 양보한 것은 전혀 없다며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8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불똥은 이제 한미일 3국 간 외교전으로 치닫고 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한 배경은 일본이 7월 초 먼저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수출 규제를 철회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소미아를 중시하는 미국을 자극했고 미국은 한국정부에 주한미군 부분 철수라는 압박카드를 내놓으며 한국을 자극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수출규제 대응으로 일본이 먼저 불을 지폈고 급하게 불을 끄기 위해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경제적 측면에서 상호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고 평했다.

여기에 미국이 또다시 개입하면서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고 일본도 수출 규제 대응 전략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한일 정부가 서로 합의하에 결정한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라는 팩트를 일본이 뒤흔들면서 한국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와 일본 언론들은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에 대해 자신들의 외교 성과라고 강조하며 실적쌓기에 나서고 있다.

not caption

24일(현지시간) 아사히신문은 한일 지소미아 종료 연장에 대해 아베 총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상당히 강해서 한국이 포기했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소미아 유지를 한국에 강하게 요구했으며 일본도 이런 미국을 지원했다. 미국이 일본에게 협정 종료를 피하기 위한 대응을 하라고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22일 마이니치신문도 한국이 협정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아베 총리가 “제대로 된 판단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한국이 일본에 양보를 했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며 아베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23일 요미우리 신문도 문재인 정권이 지소미아 종료를 피한 것은 일본의 강경한 태도 앞에 주장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주장을 굽힌 것은 거의 없어 좋은 전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3일 일본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지소미아가 조건부로 연장하기로 결정된 것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한국의 이번 결정은 미국의 파워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한국정부가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힘든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했다.

지소미아 유예 결정에 대해 미국은 환영신호를 보냈다. 미 국무부는 22일 논평을 내고 한국정부가 발표한 조건부(conditional)라는 표현을 빼고 갱신(renew)이라고 못박으며 마치 앞으로 1년간 지소미아가 유지되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24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브리핑룸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며 일본의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추호의 과장이나 거짓이 없다. 반면 일본 언론의 주장과 보도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CNN은 한미 간 의견충돌과 방위비 협상 실패를 구실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결정할 수도 있다며 일단 이번 지소미아 종료 유예로 인해 큰 고비는 넘긴 상태라고 전했다.

미 상원 외교 및 군사위원회 지도부는 23일(현지 시간)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 협정과 관련해 어렵지만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라며 “협정의 유지는 동맹 및 양자 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한 고비를 넘겼다 싶었던 한일관계가 계속해서 삐걱거리는 상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합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약속된 시간 이전에 합의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의도적으로 왜곡해 발표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국내 여론은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지소미아를 유예했지만 왜 안보를 걸고 일본과 도박을 했냐고 분통을 터트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