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정부가 고교서열화 해소 차원에서 오는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이하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자사고와 외고는 강력히 반발하며 “공론화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학교선택권을 빼앗고 있다”며 법정 투쟁을 선언했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일부 재판관이 “고교서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일반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인데 교육당국이 손쉬운 자사고 규제를 택해 전체 고교를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 자사고가 고교입시를 과열시킨다고 볼 수 없다. 고등학교 제도·종류·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은 국가와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효과가 매우 크고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얽혀 있으므로 국회가 직접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헌재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공교육이 붕괴되도록 방기한 책임이 가장 큰 기관이 교육부다. “교육부는 나서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진보교육감에 끌려 다니다 느닷없이 특목고를 일괄 폐지해 일반고의 수준을 올리겠다는 한심한 처방을 내렸다. 공교육을 살릴 묘안이 없으니 특목고 학생을 일반고로 분산 배정해 일반고의 수준이 향상되는 듯한 착시현상을 만들려는 의도다.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위헌소지까지 있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도 안 열었다. 소통을 강조해 온 정부답지 않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의 근간을 대통령, 교육부장관의 말 한마디로 허무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아집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교육 기본사항을 법률로 정한다는 ‘교육법정주의(헌법 31조6항)’,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교육받을 권리(헌법 31조1항)’가 명시돼있다. 정부가 권력을 이용해 헌법에 보장된 학생의 교육기본권을 뺏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모두가 동일한 환경에서 교육 받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각자가 자기 수준에 맞는 교육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납득하기 힘든 특목고 폐지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해 무능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대책 없는 정책으로 국민들이 이토록 많은 사안별로 두 패로 나뉘어 싸운 기억이 과거에는 별로 없다.

조국 사태로 인해 국민들이 공정한 입시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는데 엉뚱하게 특목고 폐지로 논쟁이 옮겨가게 만들었다. 고교서열화는 학종을 폐지하고 정시를 사회적약자의 통로만 남겨두고 80% 정도로 확대하고, 모든 학교의 내신을 20%정도 고르게 반영하면 대부분 사라질 문제다. 교사들의 실력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수업의 질을 높이면 자연적으로 공교육이 산다.

특목고의 입시 학원화가 문제라면 입학당시부터 동일계열 진학을 법으로 명시해 입학생을 모집하고, 법대, 의대 진학 통로로 삼는 편법이 통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면 된다. 특목고 폐지로 교육평준화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많은 상류층 자녀들이 조기 유학길에 오를 것이 뻔해 사교육비 증가를 위협하는 정도가 아닌 국가경제에도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목고를 없앤다는 정책 발표로도 벌써 강남 집값이 들썩인다. 강남 8학군이 부활해 교육특구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건 자명하다. 특목고와 전국단위 모집 자사고들이 다양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강남편중이 심화되지 않았던 이유다.

특목고를 없애 우수학생이 일반고로 편입되면 일반고의 가장 큰 문제인 고교 내 서열화가 더 심해질 것이다. 1학년 때 두각을 나타낸 아이들을 집중 지원해 명문대 진학성적을 올리려는 일반고 간 경쟁이 치열해져 중하위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아예 관심 밖 아이들로 밀려나게 된다. 학부모와 학생이 전교조 교사가 주도하는 혁신학교를 기피하고 특목고를 선호하자 특목고를 없애 혁신학교를 더 확대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수한 학생들이 편안하게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 미래의 지도자로 키우는 것이 국가의 올바른 역할이다. 노력하면 인정받는 사회가 정당하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모든 학생을 하향평준화 시키려는 국가의 폭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교사들이 난감해 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결국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도전과 응전으로 세상이 발전해왔다.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권력을 잡은 자들이 스스로 적폐가 되어 나라를 망치려고 한다. 현재 교육의 모든 문제는 교육감을 선거로 뽑고 그들이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탓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