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브리핑실에서 '주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브리핑실에서 '주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노동부, 계도기간 부여 결정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

노동계 “정부 정책에 분노”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중소기업에 적용될 주 52시간제와 관련해 기업이 법정 노동시간을 위반해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주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사실상 본격적인 제도 시행이 무기한 연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 노동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3월 개정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인 주 52시간제 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는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노동시간 제한의 특례에서 제외된 업종의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대기업에 비해 노동시간 단축 여력이 부족하고 그에 대한 준비도 미흡한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은 주 52시간제 시행 시기를 늦춰 내년 1월부터 적용하기로 했고,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등 근로기준법 개정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현재 국회는 여야의 입장 차이로 연내 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지난달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합의안을 최종 의결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며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14일 간사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나 여야 입장 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한국당은 민주당이 선택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제 확대를 수용할 경우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시한 6개월 연장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시한 6개월 연장안 외에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며 팽팽하게 맞선 상태다.

여야의 입장 차이로 연내 법 개정이 불투명해진 데다 법 시행까지 불과 1개월여밖에 남지 않게 되자, 고용노동부(노동부)는 일단 계도기간을 두고서 입법을 촉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탄력근로제 개선 등 입법이 안 될 경우 주 52시간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장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어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전체 50~299인 기업에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며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계도기간에는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위반했더라도 충분한 시정 기간을 주고 처벌을 유예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을 위해 기업에 또다른 준비 기간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9

노동부가 계도기간 부여와 함께 진행하는 특별연장근로제 확대에 대해선 주 52시간제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는 조치라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연장근로제는 자연재해와 재난 등에 대해 사업장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한 노동이 필요한 경우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연장근로를 법정 한도(1주 12시간) 이상으로 시킬 수 있게 한 법으로, 사실상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를 허용한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3조 제4항에 따르면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 때만 기업에 특별연장근로 인가가 허용된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내년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되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도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제도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기업들이 특별연장근로제를 남발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5년 6건, 2016년 4건, 2017년 15건에 불과했던 특별연장근로 인가는 주 52시간제 논의가 본격화한 지난해에는 204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10월까지 826건의 신청 중 787건이 승인됐다.

특별연장근로 운영방식에 대해 이 장관은 “특별연장근로를 길게 신청할 경우 1개월 단위로 끊도록 하고 있다”며 “1개월 단위로 하되 불가피하면 재신청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노동절망 정권의 자의적 권력 행사’라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끝내 노동시간 단축 정책마저 포기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정책 포기에 이어 노동시간 단축 정책마저 포기하는 문재인 정부 노동절망 정책에 분노한다”며 “일시적 업무량 급증은 어느 업종, 어느 사업장이나 겪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한 시행령 개정은 정부가 이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자의적인 행정을 남발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매해 폭설이나 방제작업 등 ‘일시적 업무량 급증’에 동원돼 과로사하는 공무원 노동자가 한둘인가”라고 반문하며 “정부와 국회의 개악 시도에 맞서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모아 모든 노동자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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